극단 학전 30주년 공연… 배우들의 떨림
김윤석·설경구·황정민 등 명배우 산실새 얼굴 박현선·김민성에겐 ‘큰 무게감’
“든든한 동료 덕 극복” “꼭 해야 할 작품”
IMF 이후 한국 사회 단면 신랄한 풍자
정재혁 “사회 얼마나 나아졌는가 질문”
김민기 대표 “모든 장면이 하나의 풍속화”
지난 14일 개막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30주년을 맞은 극단 학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자리에 그려 낸다. 첫 막을 올린 1994년 설경구와 나윤선, 2006년 3000회 공연에 함께한 배우 황정민과 조승우에 이어 4000회를 훌쩍 넘긴 지금의 공연을 정재혁(왼쪽부터), 박현선, 김민성이 생동감 있게 만들어 내고 있다.
“용 같은 존재였어요. 언제부터 알게 됐는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전설로 알고 있었죠.” 세 배우에게 ‘지하철 1호선’은 존재감부터 거대했다. 작품이 처음 막을 올린 해 태어난 막내 박현선은 전설의 동물을 떠올렸다. 2017년 청소년극 오디션으로 학전과 인연을 맺은 그는 날라리 여고생 날탕 역으로 ‘지하철 1호선’에 올라탔다. “진짜 용을 만났으니 얼마나 무서웠겠느냐”면서도 “든든한 동료들이 있어 두려움을 이겨 냈고 함께 용을 타고 날 일만 남았다”며 발랄하게 웃었다.
2015년 학전 어린이 무대 오디션에 합격한 뒤 ‘슈퍼맨처럼-!’, ‘고추장 떡볶이’ 등에서 활약하며 어린이 관객들에게 최고의 아이돌로 꼽히는 김민성(제비 역)도 ‘지하철 1호선’은 처음이다. “대학 시절 ‘지하철 1호선’ 대본을 잘 분석해 A+를 받았다”던 그도 이 작품이 첫선을 보였을 땐 네 살이었으니, 차범석의 ‘산불’(1963)이나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1974), 나아가 셰익스피어 ‘햄릿’(1601)처럼 엄청난 고전의 무게를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작품”이었다.
첫 막을 올린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공연 모습. 설경구(왼쪽부터)와 나윤선.
극단 학전 제공
극단 학전 제공
극을 경험한 정재혁조차 1989년생이니 1998년 11월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극이 모두에게 낯설 수밖에. ‘약장사’, ‘쓰리꾼’ 등 온갖 알 수 없는 ‘외계어’뿐이었고, 성매매, 원조교제, 제비족, 인신매매 등 ‘이래도 되나’ 싶은 일들을 대놓고 말하는 게 멋쩍었다. 그 생경함을 풀어 준 건 김민기 대표였다. “이 작품은 풍속화”라고 강조했다는 김 대표의 말을 배우들이 동시에 전했다. “김홍도 그림처럼 이 작품 어느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도 하나의 풍속화가 될 수 있게 많은 인물들이 저마다 가진 사연을 생생하게 잘 표현해 내야 한다고 하셨어요”(김민성). “그래서 어려운 단어나 불편한 대사도 그대로 남기신다고요.”(박현선)
2006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 20주년 기념 3000회 공연에서 조승우와 황정민.
극단 학전 제공
극단 학전 제공
“친정처럼 따뜻한 품”(박현선), “밥을 챙겨 주는 집 같은 곳”(정재혁)인 학전에서 이들은 선배들처럼 성장하고 뜻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30주년이라고 특별하진 않아요. 아마 김민기 선생님도 그러실 거예요. 운행을 재개한 ‘지하철 1호선’에 저희가 탔을 뿐 앞으로도 많은 배우들이 같은 경험을 하고 오래 명맥을 이어 갈 것라고 봐요.”(김민성)
글 사진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21-05-1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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