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퇴계 선생 귀향길/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퇴계 선생 귀향길/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21-04-18 20:26
수정 2021-04-19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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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즉위년(1567)에 퇴계 이황(1501~1570)에게 예조판서 겸 동지경연 춘추관 벼슬을 내리고 스승으로 모시려 했지만 사양하는 글만 올라올 뿐이었다. 이듬해 선조는 다시 의정부 우찬성 겸 판중추부사를 제수하면서 “내가 경을 바람은 북두성과도 같으니, 부디 병중에서라도 조정에 머물면서 나의 어리석은 재질을 도와 달라”고 하자 퇴계는 7월 27일 한양에 올라온다. 그해 12월 퇴계는 평생의 학문적 공력이 담긴 ‘성학십도’를 임금에게 올린 다음 몇 달에 걸쳐 사직을 청한다. 1569년 3월 4일 퇴계는 선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경복궁을 떠났다.

퇴계는 곧바로 오늘날의 경북 안동인 고향 예안으로 돌아갔다. 퇴계는 이듬해 12월 8일 세상을 떠났으니 마지막 귀향길이 됐다. 그는 칠십 평생 한양과 안동 사이를 모두 열아홉 차례 왕복했다고 한다. 퇴계는 기대승, 윤두수, 김성일 같은 문인·학자들의 전별을 받으며 동호대교 북단 두무개나루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날 밤은 봉은사에서 묵었다. 한강을 건너면 지척인 봉은사 길이 늦어진 것은 두무개에서 전송 나온 인사들과 송별시를 주고받는 선상 이별식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퇴계 선생 귀향길 재현 걷기’가 펼쳐지고 있다. 퇴계의 노정인 음력 3월 4~17일에 맞춰 지난 15일 경복궁 사정전을 출발한 행렬은 오는 28일 안동 도산서원에 닿는다. 첫 귀향길 걷기는 2019년이었다. 선생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곳곳에 남은 가르침을 되새기겠다는 일회성 행사였다. 그런데 13박 14일 일정 가운데 하루나 이틀이라도 참여하고 싶다는 일반인의 희망이 넘쳐나면서 두 번째 행사가 마련됐다.

퇴계는 한양에서 충주까지는 임금이 내준 배를 탔고, 예안까지는 말을 탔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영남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남한강 뱃길로 충주나 단양으로 가서 새재나 죽령을 넘는 것이었다. 충주에는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보관하고 나르는 조창이 있었으니 관공선을 이용한 퇴계도 가흥창에서 내렸다. 귀향길 걷기가 미음나루, 한여울, 배개나루, 흔바위나루를 지나는 것은 당시 수운을 이용했음을 상징한다. 오늘날 퇴계 귀향길 재현이 어려운 이유는 곳곳을 가로막은 댐과 보 때문이다. 충주댐 구간 30㎞는 배를 타야 한다.

때맞춰 걷기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도산서원 참공부모임은 최근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을 펴냈다. 세상의 길도 길(道)이고 마음의 길도 길(道)이니 ‘퇴계의 귀향길’에 간단치 않은 의미를 부여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2015년 출범한 공부모임의 학자 13명이 구간을 나눠 답사기를 썼는데, 이번 걷기 행사에서도 현장 해설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함께 걸어도 좋을 듯.

sol@seoul.co.kr
2021-04-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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