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지난 15일(현지시간) 신임 사무총장으로 추대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CNN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95년 WTO 창립 이래 수장 자리에 오른 첫 여성이자 첫 아프리카 출신이다.
그 자신의 말처럼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사무총장은 WTO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국가 간 자유무역을 표방하며 세계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게 설립 목적이지만, WTO는 수년간 미중 간 갈등의 장으로 전락했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에 관세를 매기며 WTO의 의미가 퇴색했고, 코로나19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백신 전쟁’까지 벌어져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콘조이웨알라가 사무총장에 임명된 건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할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수십년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쌓은 그의 정치력과 협상력이 구성원간 분쟁과 불일치로 무너져가는 조직을 다시 세울지 주목된다.
10대 때 벌어진 비아프라 내전(1967~1970)은 삶을 완전히 바꿨다. 나이지리아 동남부의 반란군이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우고 분리 독립을 시도한 것인데, 비아프라군의 준장이었던 오콘조이웨알라의 아버지를 지원하는 데 집안의 모든 돈이 들어갔다.
한 시민이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의 이름을 딴 거리 표지판 앞을 걸어가고 있다. 아부자 로이터 연합뉴스
결국 실패로 끝난 이 전쟁 이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오콘조이웨알라는 “우리는 하루에 한끼만 먹었다. 차가운 바닥과 벙커,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아이들이 내 주변에서 죽어가는 걸 봤다”며 “나는 고통을 겪는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말했다. BBC는 “그의 업무 추진력은 실제 빈곤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며 “결단력과 독립성은 그가 나이지리아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그가 장관직을 역임하며 일군 것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유가와 연동해 재정수입을 정비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전자 재무관리 플랫폼을 만들어 ‘유령 공무원’에게 새나가는 세금을 막았다.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2005년 나이지리아가 파리클럽으로부터 300억 미국달러의 부채를 탕감 받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에 나이지리아는 2006년 피치와 S&P 신용등급이 BB-로 올라갔다.
16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남서부의 이바단에서 시민들이 신임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의 소식이 헤드라인에 적힌 신문을 읽고 있다. 이바단 AFP 연합뉴스
자연히 화려한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그는 각종 잡지와 기관 등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00명,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명 중 하나다.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WB) 총재는 2011년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에서 “오콘조이웨알라는 변동 폭이 큰 식량 가격으로 타격을 입은 국가를 돕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며 “그의 리더십으로 식량위기대응프로그램(GFRP)을 마련했고, 44개국에서 4000만명 이상을 도왔다”고 했다.
앞으로 2025년까지 2억 2000만달러의 예산과 직원 650명을 아우르며 그가 해야 할 일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축소된 글로벌 무역의 회복, WTO 분쟁 해결 절차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의 재정비, 주요 회원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 과제가 많다.
“가부장 국가 희망” 국제기구 여성 참여에도 영향 미칠까
나이지리아 출신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매릴랜드주 포토맥의 자택에서 수락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포토맥 AFP 연합뉴스
앞서 오콘조이웨알라는 장관 시절부터 소년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도 활발히 펼쳤다. 국내 소녀와 여성 프로그램(GWIN)을 통해 여성의 권한을 강화했고, 청년 창업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나이지리아 여성 운동가 조세핀 에파추쿠마는 “나이지리아 같은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국가에서 오콘조이웨알라는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훌륭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했다”며 “그의 정직함과 투명함, 책임감은 나이지리아 고위공직자 대다수에게선 볼 수 없는 미덕”이라고 말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임명 후 트위터에 올린 사진. 가운데 ‘경제계 여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오콘조이웨알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오딜 르노 바소 파리클럽 의장,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트위터 캡쳐
여성의 발언권 확대는 WTO에서도 중요한 업무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제 무역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하는 도전에 화답해야 한다”며 “특히 공식 부문에 여성 소유 기업이 포함되는 게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더 그렇다”고 밝혔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는 누구 · Ngozi Okonjo-Iweala |
1954 나이지리아 델타주 출생 1977 하버드 경제학 학사 졸업 1981 메사추세츠 공대(MIT) 지역경제개발 박사 2003~2006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2006년 외무장관도 역임) 국제통화기금(IMF) 국제통화 및 재무위원회위원 2004 세계은행(WB) 개발위원회 의장 2007 WB 전무이사 2011~2015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2020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 2021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