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 사회의 여성 승리” 아프리카 소녀, WTO 첫 여성 수장으로 [김정화의 WWW]

“가부장 사회의 여성 승리” 아프리카 소녀, WTO 첫 여성 수장으로 [김정화의 WWW]

김정화 기자
입력 2021-02-20 18:42
수정 2021-05-20 14:1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4>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세계무역기구(WTO)엔 리더가 필요합니다. 새롭고 신선한 얼굴, 외부인, 개혁을 실행하고 회원국과 협력해서 현재의 기능 마비를 해결해줄 사람이요.”

지난 15일(현지시간) 신임 사무총장으로 추대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CNN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95년 WTO 창립 이래 수장 자리에 오른 첫 여성이자 첫 아프리카 출신이다.

그 자신의 말처럼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사무총장은 WTO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국가 간 자유무역을 표방하며 세계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게 설립 목적이지만, WTO는 수년간 미중 간 갈등의 장으로 전락했다.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에 관세를 매기며 WTO의 의미가 퇴색했고, 코로나19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백신 전쟁’까지 벌어져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콘조이웨알라가 사무총장에 임명된 건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할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수십년간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며 쌓은 그의 정치력과 협상력이 구성원간 분쟁과 불일치로 무너져가는 조직을 다시 세울지 주목된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내전 상처…“빈곤 경험에서 힘 키워”1954년 나이지리아 남부 델타주 오그워시 유쿠에서 태어난 오콘조이웨알라는 지독히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이바단대 교수였는데, 독일 장학생으로 유학하느라 오콘조이웨알라는 9살 때까지 할머니 밑에서 컸다. 그는 “5살 때 요리를 시작했다”며 “마을에서 여자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다 했다”고 돌아봤다. 물 긷기, 땔감 가져오기, 농장의 잡일 모두 그의 몫이었다.

10대 때 벌어진 비아프라 내전(1967~1970)은 삶을 완전히 바꿨다. 나이지리아 동남부의 반란군이 ‘비아프라 공화국’을 세우고 분리 독립을 시도한 것인데, 비아프라군의 준장이었던 오콘조이웨알라의 아버지를 지원하는 데 집안의 모든 돈이 들어갔다.
한 시민이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의 이름을 딴 거리 표지판 앞을 걸어가고 있다. 아부자 로이터 연합뉴스
한 시민이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의 이름을 딴 거리 표지판 앞을 걸어가고 있다. 아부자 로이터 연합뉴스
사촌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갑작스런 공습이 벌어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는 “집 안에 지하 대피소가 없어서 밖으로 달려나갔는데, 한 청년이 내 옆에서 총알을 맞았다”며 “청년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가 없었다면 내가 대신 총에 맞았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실패로 끝난 이 전쟁 이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오콘조이웨알라는 “우리는 하루에 한끼만 먹었다. 차가운 바닥과 벙커,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아이들이 내 주변에서 죽어가는 걸 봤다”며 “나는 고통을 겪는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다”고 말했다. BBC는 “그의 업무 추진력은 실제 빈곤의 경험에서 비롯됐다”며 “결단력과 독립성은 그가 나이지리아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AFP 연합뉴스
나이지리아 전면 개혁 앞장…‘트러블 메이커’ 별명에도 “신경 안 써”오콘조이웨알라는 경험과 이론에 두루 능한 재무·경제 전문가다. 나이지리아에서 학업을 마친 뒤 1970년대 미국으로 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MIT에서 지역경제개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는 고국으로 돌아가 재무장관을 두 차례 지냈고, 2006년에는 외무장관을 잠시 맡기도 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여성이 두 부처 장관을 지낸 건 처음이다. 또 25년을 세계은행(WB)에서 개발경제학자로 근무하며 국제무대에서 인지도를 높였다.

그가 장관직을 역임하며 일군 것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유가와 연동해 재정수입을 정비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전자 재무관리 플랫폼을 만들어 ‘유령 공무원’에게 새나가는 세금을 막았다.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2005년 나이지리아가 파리클럽으로부터 300억 미국달러의 부채를 탕감 받는 데 기여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에 나이지리아는 2006년 피치와 S&P 신용등급이 BB-로 올라갔다.
16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남서부의 이바단에서 시민들이 신임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의 소식이 헤드라인에 적힌 신문을 읽고 있다. 이바단 AFP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남서부의 이바단에서 시민들이 신임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의 소식이 헤드라인에 적힌 신문을 읽고 있다. 이바단 AFP 연합뉴스
강단 있는 그의 성격과 업무 추진 방식은 당연히 반대 세력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석유 관련 산업의 개혁을 추진하던 당시, 반대 측에서 어머니를 납치했지만 물러서기를 거부했던 일화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트러블 메이커’라는 뜻의 ‘오콘조 와할라’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별명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파이터’”라면서 “누구든 내 방식을 방해하면 내쫓길 것”이라고 했다.

자연히 화려한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그는 각종 잡지와 기관 등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00명,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명 중 하나다.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WB) 총재는 2011년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메모에서 “오콘조이웨알라는 변동 폭이 큰 식량 가격으로 타격을 입은 국가를 돕는 데 중추 역할을 했다”며 “그의 리더십으로 식량위기대응프로그램(GFRP)을 마련했고, 44개국에서 4000만명 이상을 도왔다”고 했다.

앞으로 2025년까지 2억 2000만달러의 예산과 직원 650명을 아우르며 그가 해야 할 일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축소된 글로벌 무역의 회복, WTO 분쟁 해결 절차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의 재정비, 주요 회원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 과제가 많다.

“가부장 국가 희망” 국제기구 여성 참여에도 영향 미칠까
나이지리아 출신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매릴랜드주 포토맥의 자택에서 수락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포토맥 AFP 연합뉴스
나이지리아 출신 신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매릴랜드주 포토맥의 자택에서 수락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포토맥 AFP 연합뉴스
오콘조이웨알라는 여성의 역량 강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민단체 글로벌시티즌은 “정치와 공적 생활에서 여성의 평등한 참여와 리더십 발휘는 필수적이지만, 유엔(UN)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19개국은 한번도 여성 지도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며 “오콘조이웨알라의 사무총장 임명은 특히 아프리카 여성에게 권력을 분배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앞서 오콘조이웨알라는 장관 시절부터 소년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도 활발히 펼쳤다. 국내 소녀와 여성 프로그램(GWIN)을 통해 여성의 권한을 강화했고, 청년 창업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나이지리아 여성 운동가 조세핀 에파추쿠마는 “나이지리아 같은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국가에서 오콘조이웨알라는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훌륭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했다”며 “그의 정직함과 투명함, 책임감은 나이지리아 고위공직자 대다수에게선 볼 수 없는 미덕”이라고 말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임명 후 트위터에 올린 사진. 가운데 ‘경제계 여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오콘조이웨알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오딜 르노 바소 파리클럽 의장,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트위터 캡쳐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임명 후 트위터에 올린 사진. 가운데 ‘경제계 여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오콘조이웨알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오딜 르노 바소 파리클럽 의장,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부총리 겸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트위터 캡쳐
1000만명이 넘는 아동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도 희망이다. 소말리아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나선 파두모 다이브는 “오콘조이웨알라의 임명은 아프리카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장애물에도 여성의 역량과 리더십, 탁월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의 발언권 확대는 WTO에서도 중요한 업무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제 무역에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하는 도전에 화답해야 한다”며 “특히 공식 부문에 여성 소유 기업이 포함되는 게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더 그렇다”고 밝혔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는 누구 · Ngozi Okonjo-Iweala
1954 나이지리아 델타주 출생
1977 하버드 경제학 학사 졸업
1981 메사추세츠 공대(MIT) 지역경제개발 박사
2003~2006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2006년 외무장관도 역임)
      국제통화기금(IMF) 국제통화 및 재무위원회위원
2004 세계은행(WB) 개발위원회 의장
2007 WB 전무이사
2011~2015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2020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이사회 의장
2021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임명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전북특별자치도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가능할까?
전북도가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공식화했습니다. 전북도는 오래전부터 유치를 준비해 왔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지난해 ‘세계잼버리’ 부실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상황이라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전북도의 올림픽 유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