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에 웃고 바이러스에 울다

‘기생충’에 웃고 바이러스에 울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0-12-21 22:14
수정 2020-12-22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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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문화계 결산] 영화

아카데미 4개 부문 휩쓴 ‘기생충’ 쾌거에
홍상수·정이삭 감독, 해외서 수상 낭보
관객수 작년 26%로 줄고 매출도 급락
넷플릭스 등 OTT 시장 극장 공백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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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연 영화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으로 정점을 찍었다.  AP 연합뉴스
2020년을 연 영화계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으로 정점을 찍었다.
AP 연합뉴스
올 한 해 영화계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급추락했다. 지난 2월 ‘기생충’(2019)의 아카데미(오스카) 4관왕에 힘입어 영화산업이 크게 도약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극장을 찾은 관객은 지난해의 30%에도 못 미쳤다. 신작들은 잇달아 개봉을 연기했고, 관객들은 극장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넷플릭스와 같은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가 최대 수혜자가 됐다.

올해 영화계에서 가장 돋보인 장면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영화상)을 휩쓴 것이다.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작품상과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받은 것도 처음이다.

같은 달 홍상수 감독은 ‘도망친 여자’(2019)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받았고, 미국계 한국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최근 보스턴비평가협회와 LA비평가협회에서 여우조연상(윤여정)을 차지하며 내년 오스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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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에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까지 빠르게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영화산업의 도약을 꿈꾼 것도 잠시, 급속도로 확산한 코로나19는 영화계를 한순간에 암흑기로 몰아넣었다.  쇼박스 제공
지난 1월 말에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까지 빠르게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영화산업의 도약을 꿈꾼 것도 잠시, 급속도로 확산한 코로나19는 영화계를 한순간에 암흑기로 몰아넣었다.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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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조차 맥을 못 췄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테넷’조차 맥을 못 췄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하지만 극장가는 처참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극장을 찾은 영화 관객 수는 지난 20일까지 5885만 6824명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2억 2667만 8777명)의 26% 수준에 불과하다. 영진위의 공식 집계가 시작된 2004년(6925만명)에도 못 미친다. 올해 극장 매출액도 5046억원으로 지난해(1조 9139억원)의 26.3%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엔 ‘극한직업’(1626만명), ‘어벤져스: 엔드게임’(1393만명) 등 5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끌어모았지만, 올해 박스오피스 1위 영화는 475만명을 모은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이다. 지난해 10위였던 ‘조커’(524만명)에도 못 미친다. 올해 2위는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435만명), 3위는 연상호 감독의 ‘반도’(381만명)로 집계됐다.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1월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이 시기상 코로나19의 영향을 덜 받아 다른 영화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해외 대작들의 개봉도 연기되면서 누적 박스오피스 10위 내 해외영화는 ‘테넷’(5위), ‘닥터 두리틀’(10위) 2편에 그쳤다. 이에 따라 한국영화 점유율은 68.6%로 2006년 이후 14년 만에 60%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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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등 한국영화가 비교적 선전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등 한국영화가 비교적 선전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영화사들은 제작비라도 건지자는 심정으로 극장 대신 넷플릭스 공개로 선회했다. 지난 4월 ‘사냥의 시간’(윤성현 감독)이 넷플릭스 독점 공개를 선택했다. 이어 스릴러 영화 ‘콜’과 코미디 영화 ‘차인표’, 2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인 SF 대작 ‘승리호’마저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통상 극장에서 개봉한 뒤 마지막 단계로 온라인 플랫폼으로 향하던 영화 배급 구조가 코로나19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올해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른 데 이어 올해 토론토 릴 아시안 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 수상을 이어 갔다. 지난 3월 처음 개봉했던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내년 일본 현지 개봉까지 앞뒀다. 1990년대생 여성 배우들(고아성, 이솜, 박혜수)이 활약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유의미한 흥행 성적(156만명)을 올렸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주로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여성 서사의 매력이 호소력을 얻고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넷플릭스 등 OTT의 강세로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졌기 때문에 내년에도 극장의 침체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0-12-2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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