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연미산 정상에 놓인 노아의 방주
2150년 해수면 70m 상승한 상황 가정
화석 연료 인한 심각한 기후위기 경종
이경호 작가 “우리가 기적을 만들어야”
‘선한 영향력’BTS에 간절한 도움 요청
이순녀 문화부 선임기자
충남 공주시 연미산 자연미술공원 꼭대기에 배 한 척이 있다. 땅에 비스듬히 처박혀 일부분만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대홍수에 대비해 만들었던 성경 속 노아의 방주를 본뜬 배는 지난달 30일 막 내린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총감독 임수미) 참가작 중 가장 주목받았던 설치 작품으로, 행사가 끝난 뒤에도 상설 전시 중이다. 설치미술가인 이경호 작가가 지난여름 목공 전문가인 장태산·조상철, 디자이너 엘라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UStudio´를 결성해 71일간 만들었다.
땅 위로 드러난 크기만 높이 11.6m, 길이 11m, 폭 6m의 현대판 방주는 어쩌다 산 정상에서 좌초한 걸까. 사연이 궁금해 지난 9일 이 작가와 함께 연미산 자연미술공원을 찾았다. 작품 앞 안내판에는 ‘노아의 방주- 오래된 미래, 서기 2200년 어느 날’이란 제목이 적혀 있다. 이 작가는 “인류가 기후위기에 잘 대처하지 못해 2150년 지구의 평균 온도가 6도까지 치솟아 해수면이 70m로 상승한 상황에서 방주가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50년 후에 이곳에서 발견된다는 설정”이라고 설명했다.
설치미술가 이경호 작가가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작한 ‘노아의 방주’ 옆에 서 있다.
좌초된 방주 안에서 마주하는 기후위기의 실상은 평소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가는 “2도만 올라도 해수면 상승으로 전 세계에서 수십억명의 난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등 인류 문명이 파괴될 위기에 놓이는데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라면 2100년까지 3.7도 상승을 예측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인류가 끓는 냄비 안 개구리 처지라는 걸 아직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프로젝트 그룹 ‘UStudio´를 결성해 71일간 만든 배 내부에선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담은 ‘데드라인 1.5’와 제작 과정을 기록한 영상이 상영 중이다.
2015년 부산바다미술제, 2016년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빙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발표했고, 플라스틱의 환경 오염에 경종을 울리는 ‘검은 봉지’ 시리즈 작업을 10여 년간 이어오고 있다. 이 작가는 “만약 독신이었다면 나도 남들처럼 기후위기에 별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며 “중학생인 아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하다”고 했다. 5년 전부터 전기차를 타면서 탄소배출 감소를 실천하는 이유다.
그런 그가 요즘 기회 있을 때마다 방탄소년단을 향해 간절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아미 팬이 있는 방탄소년단이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를 탑시다’는 메시지를 전파한다면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것”이란 주장이다. 미술계에서도 데미안 허스트, 아이웨이웨이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학자나 전문가의 책, 강연 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실천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강조했다. “인류가 한마음으로 생각을 바꾸는 건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걸 해내야만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듣고 있나요, BTS.
coral@seoul.co.kr
2020-12-14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