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만 낳으면 로또… 비혼출산 ‘4인 4색’ 교차하는 욕망

아기만 낳으면 로또… 비혼출산 ‘4인 4색’ 교차하는 욕망

이슬기 기자
입력 2020-12-10 17:42
수정 2020-12-11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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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대리모 계약해 리조트 생활
백인 프리미엄 주고 장애아는 낙태
부조리 불구 ‘막다른 길’ 선택지 기능
허용 여부·기준 논란에 시사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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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미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앞에서 여성들이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 속 대리모 복장으로 시위하는 모습. 당시 인준을 앞둔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가 여성 회원을 ‘시녀’라고 부르는 초교파 신앙단체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벌인 시위였다. 비밀 대리모 시설을 둘러싼 스릴러인 조앤 라모스의 데뷔작 ‘베이비 팜’은 디스토피아적 상상의 산물인 ‘시녀 이야기’보다 더 가까운 현재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평을 듣는다. AP 연합뉴스
지난 10월 미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앞에서 여성들이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 속 대리모 복장으로 시위하는 모습. 당시 인준을 앞둔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가 여성 회원을 ‘시녀’라고 부르는 초교파 신앙단체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벌인 시위였다. 비밀 대리모 시설을 둘러싼 스릴러인 조앤 라모스의 데뷔작 ‘베이비 팜’은 디스토피아적 상상의 산물인 ‘시녀 이야기’보다 더 가까운 현재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평을 듣는다.
AP 연합뉴스
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김희용 옮김/창비/612쪽/1만 6800원

방송인 사유리가 모국인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비혼출산’이 화두로 떠올랐다. 소설 ‘베이비 팜’이 다루는 대리모 출산은 비혼출산의 다른 예다.

‘베이비 팜’을 쓴 필리핀 이민자 출신 미국 저널리스트인 조앤 라모스도 인도의 대리모 산업에 관한 기사를 보고 소설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소설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도 연상시킨다. 21세기 중반, 미국에 들어선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에서 시녀 계급으로 분류돼 일종의 대리모 역할을 하는 여성을 그렸다.

다만 ‘베이비 팜’ 속 설정은 ‘시녀 이야기’보다 훨씬 더 근미래거나 혹은 지금 현재에 가까워 보인다. 최근 몇 년 새 인도·베트남 등의 아시아, 구 동구권 국가들에서 대리모 산업이 합법이거나 심지어 장려되며 첨예한 논쟁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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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골든 오크스 농장은 뉴욕주 북부의 한적한 전원에 자리 잡은 대리모들을 위한 최고급 리조트다. 전담 의사, 간호사, 영양사, 마사지사, 트레이너, 그리고 대리모인 ‘호스트’들. 그리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코디네이터들이 상주한다. 호스트들은 9개월간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대가로 매월 돈을 받고, 무사히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경우 궁핍한 삶을 바꿔 줄 거액의 보너스를 보장받는 계약을 한다. 베일에 싸인 고객들은 최상위 부자들이다.

골든 오크스 농장에 들어온 필리핀 이민자이자 싱글맘 제인, 그녀의 룸메이트인 순진한 백인 이상주의자 레이건, 농장을 총괄하는 중국계 혼혈인 메이, 제인의 나이 많은 사촌이자 신생아 보모 일을 해 온 아테까지,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진 네 여성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펼쳐진다.

농장이라는 전장터에서 여성들의 몸은 세상의 여러 부조리를 고스란히 투영한다. 호스트들은 필리핀 등 동남아 출신, 히스패닉계 등 유색인종이 대부분이지만 중산층 백인 여성은 프리미엄 대리모 취급을 받으며 따로 분류된다. 호스트 중 한 명의 태아에게서 다운증후군 인자인 21번 세염색체증이 발견되자 강제로 낙태를 당하기도 한다. 인종과 장애, 질병 등에 따라 철저히 계급이 나뉜다.

여성의 몸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성매매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많다. 골든 오크스 입소를 개인 선택에 따른 ‘교환’이라고 여긴 메이에게 레이건이 건넨 말에도 힌트가 있다. “제 말은, (중략) 어쩌면 그 ‘교환’이 ‘좋은 거래’가 아니라, 그저 순… 허섭스레기 같은 한무더기의 선택지 가운데 그나마 최선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거예요.”(94쪽) 여성의 몸에 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성매매가 사회에서 막다른 길에 몰린 여성들의 선택지라는 입장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소설은 절대 악이나 절대 선으로 양분하지 않는다. 다양한 여성들의 욕망은 교차하고 부닥치며 독자들에게 계속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대리모와 관련한 법령체계가 미비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우리는 대리모를 허용할 수 있는가,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가능한가, ‘상업적’ 대리모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인도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상업과 비상업을 가르는 구분은 어디서 오는가 등등 말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12-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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