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의 혁신경제] ‘배달의 민족’이 없었다면

[임정욱의 혁신경제] ‘배달의 민족’이 없었다면

입력 2020-12-06 20:46
업데이트 2020-12-07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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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 TBT 공동대표
임정욱 TBT 공동대표
스타트업 창업은 세상의 불편함을 푸는 문제해결에서 출발한다. 세상에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날 때 새로운 문제해결 방법이 나온다. 창업가들은 세상의 변화를 날카롭게 관찰하고,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내고, 빠르게 실행하면서 기업을 만들고 성장시킨다.

2009년 11월 말 아이폰이 한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도 그랬다. 많은 이들이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써 보며 신세계를 만났다. 김봉진 대표도 그랬다. 그는 스마트폰을 이용해 주변 식당의 메뉴를 찾아보고 음식배달주문을 바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2010년 우아한 형제들을 창업해 식당 전단지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음식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내놨다.

그의 스마트폰을 통한 음식배달앱 창업은 세계적으로 무척 빨랐다. 독일의 음식배달 스타트업 딜리버리히어로의 경우 2011년 설립됐다. 우버의 음식배달서비스 우버이츠는 2014년 시작됐고, 지금 미국 1위 음식배달서비스인 도어대시는 2013년 설립됐다.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는 일찌감치 한국 음식배달시장의 잠재력을 파악했다. 설립 이듬해인 2012년 말 요기요를 한국에 설립하고 음식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누구도 요기요가 독일회사인 것을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배달시장이 커져 봐야 얼마나 커지겠냐”며 배달의 민족을 우습게 봤다. ‘철가방’을 떠올리며 스타트업은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소위 ‘4차산업혁명’류의 첨단기술 혁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첨단 기술 개발에만 몰입한 스타트업들이 시장을 찾지 못하고 고전하는 동안 하루 세 번씩 “오늘 뭐 먹지” 하는 고민을 풀어 주는 배달의 민족은 매출이 매년 백억원대, 천억원대씩 껑충 뛰어오르며 폭풍성장을 했다.

그 사이에 음식배달 스타트업의 성장은 전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 됐다. 미국은 도어대시, 중국은 얼러머, 유럽은 딜리버리히어로, 남미는 라피 등 각 시장을 선점하는 스타트업들이 나왔다. 그리고 모두 1조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 스타트업이 됐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이미 독일의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 시총은 26조원에 이른다. 미국의 도어대시는 이번 주에 상장한다. 시총은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의 음식배달 1위 회사인 메이퇀의 시총은 220조원에 이른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큰 음식배달 스타트업이 나오지 못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안정지향적이라 대기업 취직을 선호하며 창업이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음식배달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도전하는 창업이 거의 없었다. 결국 코로나 덕분에 일본의 음식배달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 시장을 일본회사가 아닌 미국의 우버이츠가 선점했고, 또 다양한 해외 스타트업들이 일본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반면 해외 음식배달 스타트업들은 이제 감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배민 같은 강자뿐만 아니라 쿠팡이츠, 위메프 같은 강력한 도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버이츠는 2017년 들어왔다가 불과 2년 만에 철수했다.

따지고 보면 전자상거래의 글로벌 강자인 아마존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쿠팡, 티몬 등 이미 강력한 로컬 강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배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국이 변화 속에서 기회를 보고 도전하는 창업자들이 전혀 나오지 않는 보수적인 사회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한국의 음식배달앱 시장은 이미 일본처럼 독일, 미국, 중국 등의 글로벌 강자들이 각축하는 시장이 됐을 것이다.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민을 인수하면 한국의 음식배달시장은 해외기업의 독과점 시장이 될 것이란 시각이 있다. 하지만 그 딜에서 나오는 성공 경험을 가진 인재들과 돈이 다시 한국의 창업생태계로 흡수될 것이다. 성공은 성공을 낳는다. 음식배달시장에서 빠르게 더 많은 창업자들이 쏟아져 나오며 진화된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민을 인수하려면 요기요를 매각해야 한다는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 방침을 보면 이번 딜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여 아쉽다. 어쨌든 지금은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창업자들이 쏟아져 나와야 하는 시기다. 변화가 극심한 분야에 한국에서 창업이 나오지 않으면 결국 외국업체들이 들어와 시장을 가져간다. 한국에 활발한 창업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2020-12-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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