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지금까지 공개된 일본 측 자료에 따르면 오염수는 삼중수소 외에도 70% 이상이 코발트나 세슘 등 방사성물질이 방출 기준 농도를 초과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 외의 방사성물질은 추가 처리하고, 삼중수소는 기준 농도 이하로 희석해 최장 30년에 걸쳐 바다로 방출한다는 계획이다. 이론적으로는 계획대로 오염수를 잘 처리해 방출할 경우 해수 순환에 따른 추가 희석 효과로 방출 지점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우리나라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양 방출이 정말 불가피하고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양한 대안 중 하나로 고려할 수는 있겠으나 유일한 폐기 방안이라고 성급하게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참으로 곤란하다.
원전 사고로 발생된 방사성 오염수 처리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1979년에 사고가 발생한 미국 TMI 원전 2호기에서도 사고로 인한 오염수를 폐기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장기 저장, 하천 방출, 증발 후 대기 방출 등 여러 폐기 방안을 논의했고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과 규제기관의 검토·승인을 거친 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약 9000t의 오염수를 증발시켜 대기에 방출하고 잔유물은 고형화해 미국 내 방폐장에 처분했다. 이처럼 증발 후 대기 방출도 충분히 실행 가능한 후쿠시마 오염수 폐기 방안이다. 해양 방출에 비해 환경으로 방출되는 방사성물질이 대폭 감소하고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물질의 대부분을 일본 내에서 처분함으로써 당사국의 책임 의식을 보여 줄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또한 올해 8월 사이언스지 게재 논문에서 미국 해양학자가 제안한 바와 같이 부지 내외에 추가로 저장탱크를 확충해 60년 장기 저장을 통해 삼중수소 방사능의 97%를 저감하는 방안도 가능한 대안의 하나로 고려할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의 해체에 앞으로도 최소 30~4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해양 방출만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국내외 이해관계자의 불신과 반감만 더 키울 뿐이다. 일본 정부는 실행 가능한 다양한 폐기 방안에 따른 환경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평가해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고, 여유를 가지고 주변국과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구하며 순리적으로 풀어 가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도 우리나라에 미칠 수 있는 잠재 위험을 과장하거나 왜곡한 정보는 경계하는 냉정함과 현명함을 함께 유지할 필요가 있다.
2020-11-1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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