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 주둔 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며 독일에 대해 방위비 증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워싱턴DC AP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독일에 주둔한 수천 명의 미군을 오는 9월까지 감축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에서 미군을 9500명 가까이 감축하라고 지시했다며 실행에 옮겨지면 독일 주둔 미군 규모가 현재의 3만 4500명에서 2만 5000명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감축된 병력 중 일부는 폴란드와 다른 동맹국에 재배치되고 일부는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독일 정부의 정책에 대한 오랜 불만이 투영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물러난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국대사는 주독 미군의 상당한 감축을 오랫동안 압박해왔다. 미국은 독일의 국방비 지출 규모, 발틱해를 통해 러시아와 가스관을 연결하는 ‘노드 스트림2’ 사업 등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왔다. 독일은 미국의 압박에 국내총생산(GDP)의 1.35%인 국방비를 2031년까지 나토가 제시한 목표인 2%로 높이겠다고 지난해 약속한 바 있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간의 쌓인 ‘앙금’도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미국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초청했는데, 메르켈 총리가 이 제안을 거절한 것이 주독미군 감축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지난주 20분 동안 전화통화를 가졌다. 이 전화통화에서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코로나19 대처를 이유로 들면서 G7 정상회의 불참 의사를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부 G7 회원국 정상들이 참석을 거부하거나 불투명한 입장을 취하자 G7 회의에 한국 등 4개국을 초청했다.
지난주 미·독 정상 간 전화통화는 처음에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톤으로 진행되다가 ‘짜증’으로 바뀌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6일 전했다. 미·독 정상의 전화통화 내용을 듣고 정리한 한 당국자는 NYT에 “좋은 대화는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귀띔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 통화에서 계속 진행 중인 코로나19를 거론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혼자 길게 말하면서 G7 정상회의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흑인 사망 항의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훌륭하게 잘 대처하고 있으며 코로나19는 중국 잘못이라고 메르켈 총리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유럽연합(EU)에 미국산 바다가재(랍스터)에 대한 관세를 내리지 않을 경우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메인주 뱅고어를 방문해 이같이 밝히고 “중국이 미국산 랍스터에 대한 관세를 내리지 않을 경우 보복으로 관세를 부과할 중국산 상품들을 추려내라고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EU가 미국산 랍스터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지 않는다면 EU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전과 다르게 보고 있다며 협정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훌륭한 무역합의를 했다. 그런데 전염병이 중국에서 시작됐다”며 “나는 3개월 전과 무역합의를 조금 다르게 본다”고 말했다. 미중 양국이 지난 1월 체결한 1단계 무역협정에 따르면 미국이 대중국 추가 관세를 일부 보류하는 대신 중국은 앞으로 2년간 2000억 달러(약 250조원) 규모의 미국산 상품을 추가로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의 미국산 상품 수입 확대에 차질이 우려되자 미국은 이 경우 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고 위협해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물어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