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의 미학’ 추사체… 글씨 갖고 노는 유희의 경지

‘괴의 미학’ 추사체… 글씨 갖고 노는 유희의 경지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20-01-19 22:42
수정 2020-01-20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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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 개막

작년 中 전시회때 30만명 관람 큰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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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 모음집인 김정희 ‘칠불게첩’은 유불선을 아우르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  예술의전당 제공
선시 모음집인 김정희 ‘칠불게첩’은 유불선을 아우르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
예술의전당 제공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기존 형식을 깨는 파격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기 십상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개성 넘치는 글씨도 당대 사대부들로부터 백안시당했다. 추사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고 일갈했다.

지난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개막한 ‘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는 ‘괴의 미학’으로 대변되는 추사체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자리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등 여러 기관이 소장한 추사의 현판,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을 중심으로 옹방강(翁方綱·1733~1818), 완원(阮元·1764~1849) 등 추사에게 영향을 준 청나라 문인 작품까지 총 120점이 나왔다. 지난해 6~8월 한·중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로 중국 베이징에서 먼저 열렸던 동명의 전시회는 30만명이 관람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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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와 세로를 혼용한 공간 구성이 추상회화를 연상시키는 ‘계산무진’. 예술의전당 제공
가로와 세로를 혼용한 공간 구성이 추상회화를 연상시키는 ‘계산무진’.
예술의전당 제공
추사의 글씨는 변화무쌍하기 이를 데 없다. 초년과 말년 글씨가 완전히 다르고, 같은 시기라도 서체가 제각각이다.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번 전시는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과 학예일치’, ‘해동통유와 선다일미’, ‘유희삼매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3부로 나눠 보여 준다. 추사는 24세 때 아버지의 청나라 방문에 동행해 연경(지금의 베이징)에 머물며 옹방강, 완원 등과 사제의 연을 맺었다. 고증학에 일가견이 있던 추사는 왕희지, 구양순으로 대표되는 정법(正法) 서체 외에 옛 한나라 비석에 새겨진 예서체를 알게 된 뒤 한예(漢隷)의 필법을 해서에 응용해 소위 추사체를 만들어 냈다. 전시에는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실사구시잠’ 등 추사와 청조 문인의 교유 관계를 보여 주는 핵심 작품들이 두루 소개됐다.

‘괴의 미학’과 더불어 이번 전시가 주목한 추사 학예의 또 다른 특질은 현대성이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큐레이터는 “‘계산무진’과 ‘무쌍·채필’에서 보듯 글씨를 갖고 노는 듯한 ‘유희’의 경지는 추상표현주의와 일맥상통하는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조각은 추사에서 나온다”고 했던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과 단색화의 거장 윤형근(1928~2007), 서예가 손재형(1903~1981) 등 추사체의 영향을 받은 20세기 작가의 작품으로 전시를 마무리한 배경이다. 전시는 3월 15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2020-01-2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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