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2010년은 한국 언론이 제일 시끄러운 시절 중 한 해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KBS 대표이사 해임 등으로 시작된 언론과의 긴장된 관계가 주류 언론에 낙하산 인사를 보내면서 긴장 관계가 더 심해졌다. KBS와 YTN을 비롯해 많은 언론사가 파업에 들어갔다. 그 시기에는 많은 기자가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특히 해고를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아는 선배들 중에서 MBC에서 직장을 잃은 기자분도 있다. 그분들이 최근에야 근무에 복귀했고, 해직 시절에 서로 연대하면서 살아남았다. 한국 언론인들의 이러한 의리가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 역시 한국 언론의 의리를 직접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바로 2016년 여름이었다. 최근에 와서 자작극으로 평가받은 ‘쿠데타 시도’가 일어나자, 터키 대통령이 반정부 언론사들을 억지로 다 문을 닫게 했다. 이를 계기로 나도 ‘해직 기자’가 됐다. 이 소식이 전파되자 그동안 알고 지낸 모두 한국인 기자 선후배가 연락해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특히 대형 언론사에서 일하는 일부 선배들이 자기네 신문의 칼럼 자리를 마련해 줬고, 또 다른 선배들은 자기네 신문사 온라인판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나름 도움을 주었다.
지난해 9월에 사우디 기자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적으로 모든 언론사들이 이 사건에 집중했다. 이미 그전부터 비평적인 시각이 강했던 카슈끄지는 사우디에서 개혁·개방파로 알려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실세로 부상하자 반정부 언론인 성향이 강해졌다. 특히 최근에 와서 카슈끄지가 사우디에서가 아닌 영국의 BBC와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같은 국제적인 언론사들에서 맹활약을 보였다.
실종 소식 이후에 카슈끄지가 주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됐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서양 언론이 난리가 났다. 서양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 때문에 사우디 정부가 어쩔 수 없이 한 발 뒤로 물러서 카슈끄지 사건 수사를 투명하게 하겠다고 발표했고,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아들을 왕실로 초대해 위로까지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기자들은 “알파고, 중동은 좀 다르네. 너도 위험해. 이제 좀 조심해서 살아”라며 조언을 많이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서양 언론과 한국 언론의 의리를 경험하게 됐다.
그런데 늘 한국 언론에 낙관적이었던 생각이 최근에 좀 흔들리게 된 일이 생겼다. 바로 주영욱 피살 사건이다. 한국 언론에서 여행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주영욱씨는 필리핀에서 지난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피살 소식은 사건이 알려진 그날만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다음엔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다. 특히 그가 열심히 글을 기고했던 신문사가 사건을 작은 크기로 지면에 냈다.
이런 한국 언론의 모습에 마음이 좀 아프고 살짝 실망했다. 주영욱씨는 정식 기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여행 글을 기고하면서 한국 언론에 기여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국 언론인에게 판문점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만큼은 아니더라도 크게 관심거리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왜 피살당했는지, 현지 수사는 잘되고 있는지, 그가 살아 있을 때 글을 많이 기고했던 신문사들이 좀더 보도하고, 주기적으로 정보를 업데이트시켜야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가 아니다.
언론은 오직 돈만 버는 직업이 아니고 사회적 의미와 역할이 있는 일이다. 언론인들끼리의 연대는 오직 한 직업군끼리의 연대가 아니고 그 사회의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법칙이다. 이미 빛난 한국 언론의 의리가 끊임없이 더 굳건해지기를 바란다.
2019-07-03 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