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녀의 시시콜콜]사선을 넘는 아이들

[이순녀의 시시콜콜]사선을 넘는 아이들

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입력 2019-06-28 17:03
수정 2019-06-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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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비극적 장면이 전 세계를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게 했다.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리오그란데 강 인근에서 나란히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된 엘살바도르 부녀의 모습. 스물 다섯살의 어린 아빠는 딸을 티셔츠 안에 넣어 감쌌고, 두살배기 딸은 아빠 목에 한쪽 팔을 두르고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강물에 뛰어들었지만 부녀의 발은 끝내 대지를 밟지 못했다. 남편과 아이를 먼저 건너가게 한 뒤 반대편 강가에서 기다리던 아내는 사랑하는 가족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멕시코 언론이 지난 25일(현지시간) 공개한 이 한 장의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에 떠밀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참혹한 현실에 다시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보다 앞서 멕시코, 온두라스, 엘사바도르 등 중남미 이민자의 실상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진은 올해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로이터통신 김경훈 사진기자가 지난해 11월 25일 촬영한 것으로, 미국 국경수비대가 이민자 행렬을 향해 최루탄을 쏘자 온두라스 여성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포착했다. 여성이 입은 티셔츠에 그려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캐릭터와 기저귀를 찬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뛰는 아이들의 대비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모를 따라 사선을 넘는 아이들의 비극은 미국 접경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5년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려다 지중해에서 익사해 터키 해변으로 떠밀려온 시리아의 세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2017년 1월에는 미얀마군의 군사 작전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피하던 로힝야족 난민의 16개월 아들이 배가 침몰한 뒤 강가 진흙탕 속에 엎드린 채 숨진 사진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진 뒤에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살바도르 가족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멕시코 정부가 국경 단속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 이민자 행렬을 막으려 경유지인 멕시코에 관세 카드를 내세워 압박을 가한 탓이다. 지난해에만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이민자 283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비극의 고리는 끊기 어렵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이 법을 바꿨다면 그 훌륭한 아버지와 그의 딸이 당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화살을 민주당에 돌렸다. 쿠르디 사건 초기 유럽 내에서 폐쇄적인 난민 정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각국의 난민 정책은 별반 변하지 않았다.

독일 난민 구호단체 시아이는 지난 2월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난민 구조선 ‘알브레히트 펭크호’를 아일란 쿠르디호로 바꿨다. 쿠르디의 참극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는 부모의 고육지책이 아이를 사지로 몰아넣는 안타까운 상황을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하는 지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하다.

논설위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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