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아했다. 이미 작년 6월에 예고된 바 있는 일이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더욱이 우리나라가 정신질환으로 공식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중독’이란 이름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후반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과도한 인터넷 사용과 관련한 연구가 많이 시행됐다. 나도 꽤 오랫동안 연구를 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국가승인통계에 인터넷 중독을 포함시켜 전국 단위의 통계를 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총 8개 부처가 관여하며, 인터넷 중독 예방 및 해소 종합계획을 내는 등 국가적으로 대응할 문제로 인정해 왔다. 특이하게 한국, 대만, 중국에서 인터넷 중독 관련 연구가 활발하고, 많은 논문이 쏟아졌다. 이런 자료들이 20여년 쌓인 덕분인지 2013년 미국정신과학회의 분류체계 DSM 5판에 인터넷게임장애가 처음 포함됐다. 이때만 해도 정식 질환이 아닌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새로운 현상으로 부록쯤에 들어갔다.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의 연구 증거들이 아시아 국가와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고 적시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중독에서 게임으로 국한돼 질환명이 좁혀졌지만, 한국의 연구와 통계가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여기까지 오는 데 한국이 다른 질환들과 비교해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믿는다. 게임업계는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반대하나 이 논리는 허술하다. 카지노로 돈을 버는 지역이니 도박중독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 같다. 질환을 보는 보건 관점에 산업적 논리는 배제돼야 한다. 어떤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고, 지나쳐서 조절하려 해도 실패하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망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질환’으로 인정된다. 마약이나 술이 아니라 반복적 특정 행위에 몰두하면 중독에 빠진 사람의 뇌와 동일한 변화가 온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게임도 예외는 아니다. 하물며 다이어트에 집착해 절식과 폭식을 오고 가며 구토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폭식증’으로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ICD에 등재됐으니 이제 뚜렷한 문제가 있는 경우 객관적 평가를 받고 치료받을 근거가 생겼다. 정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문제가 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게임에 몰두하면 생활에 문제가 된다고 판단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실제 문제는 별로 없다면 12판에서는 삭제될지도 모른다. 게임업계도 무조건 반대보다 게임의 놀이적 측면을 입증하고, 지나친 몰입을 예방할 설정을 도입하고, 그 결과를 증거와 문헌으로 쌓아 나갔으면 한다. 생산적 토론은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 증거를 놓고 해야 하는 법이다.
2019-06-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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