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키운 소로 유명한 스페인 ‘엘 카프리초’의 스테이크. 소를 오래 키우는 이유는 지방의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방은 정말로 피해야 하는 몹쓸 영양소일까. 간단한 검색만 하더라도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굳이 첨언할 필요는 없겠다. 의사나 영양학자가 이야기하는 지방의 필요성과 유해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단지 말하고 싶은 건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지방에 대한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한 살루미 장인이 돼지 등지방을 잘라내고 있다. 등지방은 소금에 염장한 라르도로 만들어 생으로 먹기도 한다.
지방은 우리가 ‘풍미’라고 표현하는 맛과 향에 크게 관여한다. 사실 고기 맛은 살코기가 아니라 지방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맛을 혀로 분간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후각을 통해 얻는 정보가 절대적이다. 고기 냄새, 향 성분은 단백질이 아니라 지방에 잘 녹아든다. 이 때문에 살코기만 맛보면 어떤 고기인지 직관적으로 분간하기 어렵다. 지방이 곁들여져야만 고기 맛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집에서 간단히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삼겹살을 구운 프라이팬에 소고기 살코기를 올려 구워보자. 분명 소고기인데 돼지고기 맛과 향이 배어 분간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전남 광양의 닭 숯불구이. 닭의 풍미는 껍질에 붙어 있는 지방에서 나온다.
물론 마블링이 전혀 없는 소고기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존재한다. 목초만 먹여 키워 마블링이 거의 없는 소를 주로 소비하는 유럽이나 남미 사람들은 지방이 없는 소고기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 않다. 마블링 없는 소고기의 경우 대부분 겉을 감싸고 있는 지방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조리해 조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기에 스며들거나 묻어나게 한다. 지방 없는 살코기를 더 맛있게 조리하기 위한 노하우인 셈이다. 마블링이 있는 고기라면 굳이 겉 지방을 붙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이다.
지방은 그 자체로 맛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조리를 돕는 역할도 한다. 물보다 끓는점이 높은 지방이 식재료 표면온도를 높여 수분을 증발시키고 단백질을 보다 맛있게 변성시키는 작용을 한다. 다시 말해 재료의 겉을 바삭하게 하고 마이야르 반응을 통한 감칠맛을 낼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라이드 치킨이나 전, 튀김은 지방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음식이다. 지방은 채식요리에도 제법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가 평범하게 접하는 나물무침만 해도 그렇다. 마지막엔 반드시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식물성 지방을 더해 주는데 기름의 향을 첨가해 줄 뿐 아니라 입안에서 느낄 수 있는 최종 질감에도 영향을 준다.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2019-04-04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