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인간들의 ‘어두운 내면 터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분노’, ‘악인’ 등으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39)가 신작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17일 개봉)을 들고 9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쓰마부키는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한국 영화를 많이 봐 오신 한국 분들이라면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헤치는 이번 작품을 잘 이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주간지 기자 다나카가 도쿄 주택가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인 사건을 취재하던 중 숨겨진 진실에 다가서는 내용이다. 쓰마부키는 겉으로 보기에 냉철하고 이성적이지만 자신의 속내를 감춘 비밀스러운 인물인 다나카를 연기했다.
“원작 소설을 처음 읽고 느낀 건 ‘사람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은 어떤 대상에 대해 자기 멋대로 이미지를 그리고 간단히 답을 구해 버리는 동물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 놓은 이미지라는 건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리는 것이죠. 어리석은 사람들의 어두운 내면에 거울을 비추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다나카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피해자 주변인들의 편집된 기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더불어 아동 학대 혐의로 수감된 다나카의 여동생(미쓰시마 히카리)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극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쓰마부키는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가는 동시에 자신 역시 사건의 중심에 놓이는 다나카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쓰마부키는 재일한국인 3세 이상일 감독의 ‘악인’(2010)에 출연한 이후 인물의 내면을 연기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예전에는 어떤 역할을 맡으면 그 인물의 말투와 행동을 상상하며 하나씩 구축해 나갔죠. ‘악인’을 촬영한 이후에는 제가 그 인물 자체가 되어 내면적으로 저를 궁지로 몰아넣는 스타일로 연기를 해 왔어요. 생각지도 못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다나카가 잠시 상처를 잊고 있었다가 어느 순간 피를 내뿜듯 폭발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보시기에 시종일관 무표정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 나름대로 미묘한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쓰마부키는 영화 ‘보트’(2009)를 함께 촬영한 배우 하정우와의 인연이 깊다. 그는 하정우를 ‘형’이라고 불렀다.
“하정우씨가 일본에 오거나 제가 한국에 오면 서로 만나는 사이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이 연출한 ‘아가씨’ 촬영차 일본에 오셨을 때 감독님도 보고 싶었지만 형도 만나고 싶어서 현장을 찾았었죠. 여전히 술 잘 마시더라고요. 같이 많이 마셨어요(웃음). 하정우씨와 또 영화를 찍고 싶은데 아무래도 여러분께서 기사를 많이 써 주시면 현실이 되지 않을까요. 하하하.”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