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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계속 지워도 무한 증식하는 동영상…유포 6개월 만에 40만명 돌려봤다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계속 지워도 무한 증식하는 동영상…유포 6개월 만에 40만명 돌려봤다

임주형 기자
임주형 기자
입력 2019-01-06 22:44
업데이트 2019-01-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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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비동의 촬영물 유통 경로 추적

바퀴벌레 떼 같은 업로더들과의 싸움
단속 기간엔 웹하드서 SNS로 갈아타
2712개 업로드…삭제 성공률 88.6%
삭제 어려운 P2P 업로드땐 급속 확산
첫 유포 2주일 내 차단해야 피해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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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이 땅에 ‘잊힐 권리’ 따윈 없다는 점이다. 몰래카메라나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속칭 리벤지포르노)은 마치 바퀴벌레 떼와 같다. ‘약’을 치면 사라지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누군가의 PC나 모바일로 흘러들어가 잠복하다 비웃듯 되살아난다. 서울신문은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함께 한 번 유포된 영상이 6개월간 얼마나 질긴 생명력으로 피해자의 영혼을 갉아먹는지 추적해 봤다.

이은희(가명·피해자 보호를 위해 나이는 공개하지 않습니다)씨가 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린 건 지난해 5월 22일. 한 달 전부터 옛 연인과 사랑을 나눴던 순간이 누군가에 의해 촬영돼 온라인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옛 연인은 자신이 유포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불법 촬영이나 최초 유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우고 지워도 다시 올리는 업로더였다.

이씨의 영상은 5월에만 217개의 영상이 돌아다니는 걸로 확인됐다. 217명이 봤다는 뜻이 아니다. 217개 ‘방송국’에서 24시간 중계를 이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웹하드(138개)가 가장 많았고, 성인사이트(39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20개), 개인 간 파일공유 사이트(P2P·20개)에도 영상이 있었다. 지원센터는 이들 사이트 운영자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이메일을 보내 이씨 영상이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임을 알리고 삭제를 요청했다. 일단 163개(75.1%)는 지우는 데 성공했다. 성인사이트에선 모두 내려졌고, 웹하드에서도 89.9%(124개)가 사라졌다. 하지만 SNS와 P2P에선 여전히 모든 영상이 돌아다녔다. 삭제 요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경찰청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차단하지만 통상 한 달 이상 걸린다.

다음달인 6월에도 이씨의 영상은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웹하드에선 발견되지 않았지만, 성인사이트에 다시 239개나 게재됐다. SNS와 P2P에서 확인되는 영상수도 각각 52개와 38개로 늘어났다. 영상엔 ‘OO녀’란 이름이 붙었고, 이제 구글 등 포털사이트 검색(5개)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한다. 입소문이나 누군가 검색 중이라는 방증이다. 6월 파악된 영상은 총 334개. 한 달 전보다 53.9%나 늘어난 것이다. 7월은 더 잔인했다. 웹하드에서 다시 71개가 발견되는 등 508개로 늘었다. 지원센터 직원들이 밤샘 작업을 하며 삭제했지만 지우는 것보다 올리는 속도가 더 빨랐던 셈이다.

8월부턴 상황이 좀 달라졌다. 좋은 조짐과 나쁜 징조가 동시에 보였다. 일단 웹하드에선 영상이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 성인사이트에서도 게재 숫자가 확연히 줄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디지털 성폭력 엄벌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와 20만여명이 서명하는 등 여론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사이버성폭력 특별 단속’을 시작한 것도 어느 정도 먹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는 사각지대였다. SNS에선 8~10월 592개, 포털에선 433개나 발견되는 등 여전히 이씨 영상이 활개를 쳤다. 경찰이 웹하드와 성인사이트를 틀어먹자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풍선효과’도 감지됐다.

11월은 한 줄기 희망마저 사라진 순간이었다. 23일까지 전달보다 2배 이상 많은 471개가 발견되는 등 다시 폭증했다. 그간 잠잠했던 카페와 블로그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무더기로 영상이 나왔다. 제목 장사를 하려는 듯 덕지덕지 더러운 수식어들도 나붙었다. 다른 장기로 전이된 암세포 같았다. 포털 검색에서도 244개가 발견되는 등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씨가 지원센터에 신고한 후 6개월간 업로드가 공식 확인된 영상수만 총 2712개. 다운로드하거나 실시간 재생으로 영상을 본 사람은 최소 40만명 이상인 것으로 지원센터는 추정했다. SNS나 P2P는 게시물에 접근한 사람(클릭 또는 다운로드) 수를 확인할 수 있어 대략적인 ‘시청자’ 규모를 유추한 것이다. 확인하지 못한 이씨 영상이 더 있을 것을 감안하면 실제 ‘시청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 영상 중 2404개(88.6%)는 다행히 발견 한 달 이내에 삭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99.2%)와 포털 검색(97.2%), 웹하드(93.3%), SNS(93.0%) 등은 그나마 삭제가 잘 되는 편이다. 하지만 유독 P2P(35.5%)는 삭제 성공률이 크게 떨어졌다. 박성혜 지원센터 삭제팀장은 “업무를 해 보니 영상 확산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은 첫 유포가 시작된 지 3~7일 정도”라면서 “특히 토렌트 등 P2P에 영상이 게재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이 한 필터링 업체에 의뢰해 개인 피해 영상물에 대한 차단 건수를 살펴본 결과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진 지난 연말에도 27개 웹하드에서 한 달 평균 13만 건에 달하는 불법 업로드 시도가 이어졌다. 성관계 동영상이 유포돼 최근 차단을 요청한 A씨의 영상물의 경우 지난 1년여간 웹하드에서만 5000회가 넘는 업로드 시도가 반복됐다.

필터링 업체 관계자는 “한 번 영상이 뿌려지면 몇 년이 지나도 반복적으로 재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피해를 막으려면 첫 유포 후 늦어도 2주일 안에 삭제 및 차단 조치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리벤지 포르노’ 용어 사용을 지양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온라인에 유포된 일반인 성관계 영상을 흔히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라고 부른다. ‘복수’(리벤지)라는 단어와 ‘상업용 음란물’(포르노)을 합친 것이다. 헤어진 사람이 앙심을 품고 영상을 퍼뜨린 경우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란 걸 감안하면 가해자인 ‘남성 중심’의 언어다. 또 공개를 목적으로 찍거나 찍힌 영상이 아니기에 ‘포르노’란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 서울신문은 학계와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참조해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로 표현한다. 단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로 ‘속칭 리벤지포르노’라는 부연 설명을 붙인다.
2019-01-0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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