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동안 농구를 귀로 보았습니다

22년 동안 농구를 귀로 보았습니다

임병선 기자
입력 2018-12-30 22:26
수정 2018-12-3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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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랜드 명예선수 1호 김민석씨

다섯 살 때 머리 혹 제거 후 ‘어둠 속 세상’
명암만 겨우 구분… 경기 소리 듣고 관전
22년 전 대우 제우스 시절부터 열성 팬
김씨, 한국 나이 기념 등번호 32번 택해
선수단, 삼성전서 유니폼 증정·위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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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훈 감독과 전자랜드 선수단이 30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8~19시즌 프로농구 삼성과의 홈 경기가 열리기 전 ‘명예선수 1호’로 위촉된 김민석(가운데 휠체어)씨에게 등번호 32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증정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유도훈 감독과 전자랜드 선수단이 30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8~19시즌 프로농구 삼성과의 홈 경기가 열리기 전 ‘명예선수 1호’로 위촉된 김민석(가운데 휠체어)씨에게 등번호 32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증정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2년 동안 농구를 귀로 듣고 마음으로 봤습니다.”

프로농구 전자랜드 구단의 전신 대우제우스가 창단한 1997년 2월부터 그는 인천 프로농구를 사랑했다. 홈 경기가 열릴 때면 거의 빠짐없이 찾아와 응원했다.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그가 이렇게 20년 넘게 꾸준히 전자랜드를 사랑한 것은 앞을 볼 수 없었는데도 관중석의 열정과 흥분이 마냥 좋았고 전자랜드 선수들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30일 삼성과의 프로농구 정규리그 4라운드가 열린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는 경기를 앞두고 명예선수 1호로 김민석(31)씨를 위촉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유도훈 감독이 등번호 32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증정한 뒤 벤치 멤버들까지 모두 그를 에워싸고 기념촬영을 했다. 32번을 택한 것은 자신의 한국 나이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함석훈 장내 아나운서는 “김씨가 3년 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점을 관중 여러분이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김씨는 유치원을 다니던 다섯 살 때 머릿속에 생긴 혹을 제거한 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세상이 검게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앞을 전혀 볼 수 없고 빛과 어두움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 한 방송사 인터뷰를 통해 “전자랜드 형들을 위해 드럼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며 드럼 스틱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또 프로야구 SK와 두산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1997년 2월의 어느 날처럼 그는 이날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어머니와 함께 경기장을 찾아 팀이 파죽지세로 창단 첫 우승을 향해 진군하는 순간을 함께했다.

유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 및 사무국 모두가 감사의 뜻을 담아 김씨를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명예선수 1호로 위촉하며 감사패를 전달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농구연맹(KBL) 관계자는 루게릭병과 싸우다 세상을 떠난 박승일 전 모비스 코치가 KBL 명예사원으로 위촉된 일은 있지만 구단 차원에서 명예선수를 위촉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김성헌 전자랜드 사무국장은 “병원에 확인해 오늘 경기장에 나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느라 아침에야 위촉식 행사를 확정했다. 김씨가 우리 팀이 창단 첫 챔피언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함께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자랜드는 이날 삼성을 102-85로 제압하며 kt를 밀어내고 단독 2위가 됐다. KGC인삼공사는 SK를 83-78로 따돌리고 7년 만의 8연패에 빠뜨렸다.

글 사진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2018-12-3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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