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13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 사직동 근처의 어느 한정식집에서 문재인 변호사를 만났다. 노 당선인은 “달리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며 문 변호사에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맡아 달라고 했다. 노 당선인은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검찰을 장악할래야 할 수 없는 비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려고 한다”며 문 변호사를 다그쳤다. 문 변호사는 “며칠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 뒤 부산으로 가서 1주일 정도 고민하다 노 당선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해 1월 23일 민정수석 내정자로 일을 시작한 문 변호사는 2004년 2월까지 첫 번째 임기를 마쳤다.
탄핵 때 노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으로 일한 뒤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2005년 1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두 번째 민정수석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두 번에 걸쳐 2년 5개월간 민정수석으로 재임했다. 참여정부는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통틀어 최장 기간 민정수석을 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민정수석의 자격과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다. 비검찰 출신으로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개혁과 사법개혁을 이뤄 낼 사람을 첫손에 꼽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문 대통령이 첫 번째 민정수석으로 조국 서울대 교수를 낙점한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과거 민정수석 시절 시도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 각 부처의 과거사 정리 등을 조 수석은 깔끔하게 처리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안이 불거지기 전 “조 수석만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야당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조 수석을 내칠 수 없는 이유는 15년 전부터 민정수석 업무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조 수석 이외에 실행할 수 있는 ‘대체재’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조 수석 간의 인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수석이 공동 집필한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문 대통령이 읽고서다. 문 대통령은 조 교수에게 친필로 책에 대한 견해를 써 보내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수석은 2015년 5월 당의 ‘김상곤 혁신위원회’에 혁신위원으로 참여해 최고위원회 구성과 공천룰 쇄신, 당헌·당규를 전면 개정하는 성과를 내면서 문 대통령의 눈에 든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의 한 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성과를 내는 조 수석을 경질했을 경우 노 대통령 때부터 가다듬어 온 민정수석의 과제가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을 문 대통령이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아르헨티나 출국 전 페이스북에 ‘믿어 달라. 정의로운 나라, 국민의 염원을 꼭 이뤄 내겠다’는 글을 올린 때는 조 수석의 경질을 염두에 뒀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나서 “조 수석은 사법개혁의 상징이며 촛불의 꽃”이라며 감싸기에 나서자 문 대통령이 다시 생각을 바꿨다는 주장이다. 여권의 또 다른 인사는 “사정 업무와 인사 검증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이 왜 사법개혁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조 수석의 문제가 이렇게 커질 사안이 아닌데 조 수석의 몸값이 실제보다 커지면서 그의 거취가 마치 정권의 운명처럼 됐다”고 비판했다.
어쨌든 문 대통령은 조 수석을 재신임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에 대한 대검의 감찰 결과에 따라 조 수석에 대한 퇴진 요구가 또 한번 요동칠 수도 있다. ‘조국 지키기’가 대야 강경책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국회 입법이 필요한 사법개혁안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래저래 문 대통령의 조 수석 발탁과 무한한 신임은 집권 3년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의 분수령이 돼 버렸다.
조 수석의 처신이 중요하다. 조 수석에게 사퇴하라는 야당 요구가 정치공세로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책임자인 조 수석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긴 어려운 측면도 있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는 등의 오해도 더이상 받아선 안 될 일이다. 조 수석이 표적이 될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문 대통령에게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주군’ 문 대통령을 살리고, 모든 비판을 감내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수행한 후 조용히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조 수석은 곱씹어 보길 바란다.
jrlee@seoul.co.kr
이종락 논설위원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민정수석의 자격과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업무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다. 비검찰 출신으로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개혁과 사법개혁을 이뤄 낼 사람을 첫손에 꼽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문 대통령이 첫 번째 민정수석으로 조국 서울대 교수를 낙점한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과거 민정수석 시절 시도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 각 부처의 과거사 정리 등을 조 수석은 깔끔하게 처리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안이 불거지기 전 “조 수석만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야당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조 수석을 내칠 수 없는 이유는 15년 전부터 민정수석 업무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조 수석 이외에 실행할 수 있는 ‘대체재’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조 수석 간의 인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수석이 공동 집필한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문 대통령이 읽고서다. 문 대통령은 조 교수에게 친필로 책에 대한 견해를 써 보내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수석은 2015년 5월 당의 ‘김상곤 혁신위원회’에 혁신위원으로 참여해 최고위원회 구성과 공천룰 쇄신, 당헌·당규를 전면 개정하는 성과를 내면서 문 대통령의 눈에 든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의 한 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성과를 내는 조 수석을 경질했을 경우 노 대통령 때부터 가다듬어 온 민정수석의 과제가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을 문 대통령이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아르헨티나 출국 전 페이스북에 ‘믿어 달라. 정의로운 나라, 국민의 염원을 꼭 이뤄 내겠다’는 글을 올린 때는 조 수석의 경질을 염두에 뒀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후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나서 “조 수석은 사법개혁의 상징이며 촛불의 꽃”이라며 감싸기에 나서자 문 대통령이 다시 생각을 바꿨다는 주장이다. 여권의 또 다른 인사는 “사정 업무와 인사 검증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이 왜 사법개혁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조 수석의 문제가 이렇게 커질 사안이 아닌데 조 수석의 몸값이 실제보다 커지면서 그의 거취가 마치 정권의 운명처럼 됐다”고 비판했다.
어쨌든 문 대통령은 조 수석을 재신임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에 대한 대검의 감찰 결과에 따라 조 수석에 대한 퇴진 요구가 또 한번 요동칠 수도 있다. ‘조국 지키기’가 대야 강경책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국회 입법이 필요한 사법개혁안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래저래 문 대통령의 조 수석 발탁과 무한한 신임은 집권 3년차를 맞는 문재인 정부의 분수령이 돼 버렸다.
조 수석의 처신이 중요하다. 조 수석에게 사퇴하라는 야당 요구가 정치공세로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민정수석실 책임자인 조 수석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긴 어려운 측면도 있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는 등의 오해도 더이상 받아선 안 될 일이다. 조 수석이 표적이 될수록 그 부담은 고스란히 문 대통령에게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주군’ 문 대통령을 살리고, 모든 비판을 감내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수행한 후 조용히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조 수석은 곱씹어 보길 바란다.
jrlee@seoul.co.kr
2018-12-12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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