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1980년 마이크로칩과 2018년 인공지능/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1980년 마이크로칩과 2018년 인공지능/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입력 2018-09-20 17:30
수정 2018-09-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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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설명하는 기술은 무엇일까? 이 기술은 수백만 가지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노동과 여가에 대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데, 한 가지는 모든 사람의 노동시간이 현저히 줄어드는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소수의 엘리트는 하루 종일 일하는 반면 대다수의 대중은 필요가 없어 영원히 고용되지 않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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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상당수는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두고 최근에 누가 한 말이 아닐까 짐작했을 테지만 여기서 말하는 기술은 30여년 전의 마이크로칩이다. 1980년 피터 라지라는 기자가 ‘극소 혁명’(The Micro Revolution)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마이크로칩이 내장된 기계, 즉 컴퓨터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벌어질 것이라며 그려 낸 사회상이다.

자동화 기술이 노동을 대체해 대량 실직이 발생한다는 우려는 최근 인공지능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반복돼 왔다. 멀게는 산업혁명 때 러다이트들이 기계를 부술 때 그랬고 1960년대 초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자동화로 일자리가 감소할 것을 우려해 이 이슈를 다룰 국가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위에서 본 것처럼 1980년에 피터 라지가 컴퓨터를 보면서 했던 걱정을 30여년이 지나 우리가 인공지능을 보면서 또다시 하고 있다.

반복되는 우려에도 대량 실직과 같은 디스토피아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기술혁신이 기존 일자리를 파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공장 자동화로 자동차가 대량생산되자 마부와 대장장이는 실직자가 됐지만, 공장 노동자, 관리직 노동자, 회계사 등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들이 생겨났다. 1970년대 은행에 도입된 현금자동출납기(ATM)도 은행원의 일자리를 빼앗기보다는 많은 은행원을 출납업무 창구에서 상담업무 창구로 이동시켰을 뿐이다.

기술혁신은 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기존 일자리를 보충해 왔으니 노동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에도 안심하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공지능 기술이 일자리에 미칠 충격을 경고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고 말한다. 이들에 따르면 기계가 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연산 자원이 필요했던 운전직부터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추론 능력이 요구되는 전문직까지 전방위적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나는 인공지능이 앞으로 어떤 일자리를 얼마나 사라지게 할지 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합의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수십 년 내에 미국의 직업 중 약 47퍼센트가 자동화로 사라질 위기라는 옥스퍼드대 연구진의 보고서는 한국에서 자주 인용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보고서에서 사용된 방법론을 비판하며 새로 계산한 OECD의 보고서는 9% 정도만이 인공지능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 OECD 보고서 또한 기계가 종종 인간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작업을 수행하는데 인간의 작업 방식을 기계가 따라한다고 가정했다며 비판받고 있다.

이 논쟁을 보면 기술 진보에 따른 노동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엄밀한 과학적 예측을 넘어선 일인 듯하다. 그보다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시나리오 작업에 가까운 일이다. 기술혁신의 최종 목표가 무엇일지, 이 혁신으로 이뤄 낼 이상적인 노동자의 삶이 무엇일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노동의 미래 시나리오도 달라질 수 있다. ‘묵시론적인’ 한 가지 시나리오에 기대어 기계가 모방할 수 없는 창조적인 일을 하는 직업을 찾으라고 하는 조언은 적어도 책임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누군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 일을 할 능력이나 준비할 여건이 안 되는 것일 뿐이다.

불확실한 노동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우선적인 일은 현재 인공지능의 뒤에서 보이지 않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돌보는 일이다. 화려한 인공지능 기술의 뒤에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지위에 시달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현재의 노동자를 잘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노동의 미래를 대비하는 일일 것이다.
2018-09-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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