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화재청이 전남 목포와 전북 군산, 경북 영주 등의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철저하게 점(點) 단위로 이뤄졌던 종전의 문화재 등록 범위를 선(線)이나 면(面) 단위로 확대하겠다는 정책이 적용된 첫 사례다. 앞으로도 급속한 도시화로 고유의 모습을 잃어 가는 마을이나 거리, 염전 등을 맥락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문화재청의 이번 조치를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던 곳은 전남 고흥의 소록도였다. 나라 안 어느 곳보다 보전 조치가 시급한 곳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소록도 상황 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그는 많은 건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그리 걱정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상당수 건축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니 말이다.
한데 정작 중요한 게 빠졌다. 한센인들이 실제 거주하던 집, 병사(病舍)다. 서울신문 보도(9월 6일자 9면)에 따르면 소록도의 병사 112개 동 가운데 64개 동이 방치돼 있다. 병사의 건물로서 ‘법적 지위’는 등록 말소된 폐가다. 이는 감금실, 식량창고 등의 등록문화재들과 달리 보호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도 보건복지부 산하 소록도병원의 많지 않은 관리 예산으로 겨우겨우 허물어지는 것만 면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진 것들도 적지 않다. 한센인들이 ‘저주받은 땅’이라 불렀다는 벽돌공장 터, 간장공장 등은 이미 종교시설, 기념물 등으로 대체돼 사라졌다. 위로로 포장된 값싼 자본의 그림자도 쉴 새 없이 기웃거린다. 가장 극적인 곳은 한센인 치료를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자혜의원이다. ‘복원’했다는 자혜의원 안쪽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혀 탄식만 나온다. 소록도의 역사나 다름없는 곳을 시골의 버스대합실보다도 못하게 ‘복원’해 놓는 만용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는 역사에 대한 경시이고 만행이다.
건물 몇몇을 활용하자거나 리모델링하자는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곳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아네 스퇴거와 마르가레트 피사레크가 1962년부터 머물던 집이다. 평생을 검박하게 살았던 두 ‘소록도 할매’들의 멀쩡한 거처를 왜, 어떻게 리모델링하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만약 독일이 아우슈비츠를, 일본이 군함도의 건물들을 흉물이라며 헐고 기념관 등을 지어 올리려 했다면 두 나라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다소 과장된 비교이기는 하나 처절한 삶의 기억이 쌓인 곳이란 점에서 보면 소록도 한센인 마을과 이 유적들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소록도를 단순히 ‘보건 복지’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때는 지났다. 역사와 문화유산의 시각까지 덧붙여 봐야 한다. 소록도 전체를, 혹은 일부 지역만이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자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야 ‘고유의 모습을 잃어 가는 한센인 마을들을 맥락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듯해서다.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은 ‘집은 기억’이라고 했다. 집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소록도가 소록도일 수 있는 건 100년에 걸친 한센인들의 삶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다. 그 기억은 여태 이어지고 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지금, 허물어져 내리는 기억의 집들을 온전히 지켜 내야 하는 건 역사가 우리에게 지워 준 책무다.
angler@seoul.co.kr
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몇 달 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소록도 상황 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그는 많은 건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그리 걱정할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상당수 건축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니 말이다.
한데 정작 중요한 게 빠졌다. 한센인들이 실제 거주하던 집, 병사(病舍)다. 서울신문 보도(9월 6일자 9면)에 따르면 소록도의 병사 112개 동 가운데 64개 동이 방치돼 있다. 병사의 건물로서 ‘법적 지위’는 등록 말소된 폐가다. 이는 감금실, 식량창고 등의 등록문화재들과 달리 보호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도 보건복지부 산하 소록도병원의 많지 않은 관리 예산으로 겨우겨우 허물어지는 것만 면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진 것들도 적지 않다. 한센인들이 ‘저주받은 땅’이라 불렀다는 벽돌공장 터, 간장공장 등은 이미 종교시설, 기념물 등으로 대체돼 사라졌다. 위로로 포장된 값싼 자본의 그림자도 쉴 새 없이 기웃거린다. 가장 극적인 곳은 한센인 치료를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자혜의원이다. ‘복원’했다는 자혜의원 안쪽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혀 탄식만 나온다. 소록도의 역사나 다름없는 곳을 시골의 버스대합실보다도 못하게 ‘복원’해 놓는 만용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이는 역사에 대한 경시이고 만행이다.
건물 몇몇을 활용하자거나 리모델링하자는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곳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아네 스퇴거와 마르가레트 피사레크가 1962년부터 머물던 집이다. 평생을 검박하게 살았던 두 ‘소록도 할매’들의 멀쩡한 거처를 왜, 어떻게 리모델링하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만약 독일이 아우슈비츠를, 일본이 군함도의 건물들을 흉물이라며 헐고 기념관 등을 지어 올리려 했다면 두 나라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다소 과장된 비교이기는 하나 처절한 삶의 기억이 쌓인 곳이란 점에서 보면 소록도 한센인 마을과 이 유적들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소록도를 단순히 ‘보건 복지’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때는 지났다. 역사와 문화유산의 시각까지 덧붙여 봐야 한다. 소록도 전체를, 혹은 일부 지역만이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자는 건 이 때문이다. 그래야 ‘고유의 모습을 잃어 가는 한센인 마을들을 맥락에 따라 입체적으로 보존’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듯해서다.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은 ‘집은 기억’이라고 했다. 집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소록도가 소록도일 수 있는 건 100년에 걸친 한센인들의 삶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다. 그 기억은 여태 이어지고 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지금, 허물어져 내리는 기억의 집들을 온전히 지켜 내야 하는 건 역사가 우리에게 지워 준 책무다.
angler@seoul.co.kr
2018-09-11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