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실 에어컨 선행’ 부부 “25년째 살고 있으면서 못 해드린 게 부끄러울 뿐”

‘경비실 에어컨 선행’ 부부 “25년째 살고 있으면서 못 해드린 게 부끄러울 뿐”

기민도 기자
입력 2018-08-07 19:25
수정 2018-08-07 19:2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최기영·백은옥 부부

이미지 확대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동아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경비실 냉방기 전기사용료 지원에 대한 주민 의견을 묻는 안내문. ‘찬성한다’ 내용의 포스트잇이 24장 붙었다.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동아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경비실 냉방기 전기사용료 지원에 대한 주민 의견을 묻는 안내문. ‘찬성한다’ 내용의 포스트잇이 24장 붙었다.
연합뉴스
“25년째 살고 있는데 밤낮으로 고생하시는 경비아저씨께 그동안 뭐 하나 해드린 게 없어요.”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동아아파트 자택에서 만난 최기영(62)·백은옥(54) 교수 부부는 최근 알려진 경비원에 대한 ‘에어컨 선행’이 주목받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신문에 사진이 실리는 것도 극구 거절했다.

교수 부부는 지난달 26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대책 없는 무더위를 경비아저씨들은 어떻게 견디시나 늘 마음 한편이 무겁다”면서 “경비실에 냉방기가 설치되면 각 가정에서 월 2000원 정도의 전기사용료를 나눠 낼 의향이 있으신가요”라고 의견을 묻는 안내문을 붙였다. 그로부터 1주일 만에 ‘○○호 찬성’이라는 포스트잇이 24개가 붙었다. 전체 가구 수가 30가구임을 고려하면 80%의 찬성률이었다.
이미지 확대
지난 3일 교수 부부가 자비로 지원한 에어컨 앞에서 경비원이 바람을 쐬는 모습.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지난 3일 교수 부부가 자비로 지원한 에어컨 앞에서 경비원이 바람을 쐬는 모습.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부부는 지난 3일 경비실 공간에 알맞은 소형 에어컨을 자비로 구입해 설치했다. 그러자 이병필(55)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도 부부의 선행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자비로 경비실 초소 등 2곳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부부는 “주민들과 함께한 일이기 때문에 저희가 주목받을 일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며 “이번 사례가 하나의 미담으로만 끝나지 않고 다른 곳에도 온정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에어컨 설치로 추가되는 월 전기료 6만원을 30가구로 나누면 두 달에 4000원에 불과한데, 이는 커피 한잔 값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부부는 당초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면서 전기료도 직접 낼 생각이었다고 했다. 백씨는 “귀찮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같은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해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최씨는 “각자 자산을 조금이라도 떼어 공동체에 쓰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부부가 이 프로젝트 추진을 서두른 것은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다간 더운 여름이 다 지나갈 것 같아서였다. 일단 경비실 추가 전기료를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내는 방식의 결과가 긍정적이면 파급 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고, 기대는 현실이 됐다. 최씨는 “다른 아파트에 사는 지인들이 어떻게 하면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추진할 수 있느냐고 묻는 연락이 온다”면서 “이는 아파트 주민 모두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선뜻 나서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부부는 기계화 시스템이 경비원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최씨는 “자동화로 남게 되는 노동력은 일자리가 아닌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