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숙인 위한 ‘생리대 기부함’ 만든 대학생들
“여성 노숙인을 위한 생리대 기부가 화수분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여성 노숙인을 위한 생리대 기부 캠페인 ‘5분의1’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예대 광고창작동아리 ‘심봉사’의 학생들이 2일 서울 지하철 영등포역 회의실에서 기부받은 생리대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정다빈, 이미산, 김다현, 김희진, 배재섭 학생.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깔창 생리대’도 캠페인 추진 배경
봉사는 지난해 11월 졸업반이던 서울예대 학생 3명(최진홍·우재하·김소영씨)의 수업 과제에서 출발했다. 캠페인 명칭은 ‘5분의1’로 정했다. 여성이 보통 휴대하는 생리대 5개 가운데 1개를 노숙인에게 기부하자는 취지였다. 지금은 17·18학번 학생 14명이 주 2~3회씩 영등포역에 들러 생리대 70~90개를 채워 넣고 있다. 최진홍·우재하·김소영씨는 오는 6일 서울시로부터 성평등상 공로상을 받는다.
지난 3월 ‘5분의1’ 캠페인에 인천 인명여고 1학년 7반 학생들이 기부한 생리대 하나하나에 응원 메시지가 적혀 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노숙인이 많은 역의 관계자를 만나 협력을 구했지만 “노숙인이 더 많아져 승객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차례 거절당한 끝에 영등포역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이 역의 배은선 부역장은 “학생들의 역발상이 참신했다”고 말했다. 노숙인에게 편의를 제공할수록 일반 시민들이 더 불편할 것이라는 편견을 지우고 그들이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면 역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등포역 주변 노숙인 100여명 가운데 10여명이 여성이다.
여성 화장실에 생리대 기부함을 설치하자 기부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김다현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주소를 묻고 택배로 보내 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기부자는 대부분 익명의 개인들이다. 영등포역 안내소를 통해서도 2~3일에 한 상자씩 꾸준히 생리대가 들어오고 있다. 학생들과 영등포역 직원들은 “여고생들이 자필 편지와 함께 생리대를 하나하나 모아 보내 준 것이 가장 잊을 수 없는 기부”라면서 “정성 들여 쓴 편지에 모두 눈가가 촉촉해졌다”고 말했다.
영등포역 2층 여성화장실에 비치된 생리대 기부함.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여성 노숙인에 대한 선입견도 사라졌다. 김희진씨는 “처음 화장실에 생리대를 넣으려고 들어갈 땐 조금 무서웠지만 이젠 우리와 똑같은 이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남학생인 배재섭 동아리 회장은 “그동안 TV에서 보아 온 노숙인의 전형이 뒤집혔다”고 했다. 배씨의 자취방에 생리대가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고 부모님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서울 영등포역에 설치된 생리대 기부함.
‘5분의1’은 이 캠페인을 한부모 가정 등 저소득층 전반으로 확대하고 싶어 했다. 이미산씨는 “서울역이나 을지로 등의 노숙인들에게도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18-07-0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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