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그날처럼 울지 않는다

내일은, 그날처럼 울지 않는다

임병선 기자
입력 2018-06-25 18:14
수정 2018-06-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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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일전 ‘평행이론’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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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지난 24일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서 0-2로 뒤진 후반 인저리타임 중거리 슈팅으로 대회 첫 골을 터트린 뒤 기쁜 표정 없이 주먹만 불끈 쥐고 있다.  로스토프나도누 연합뉴스
손흥민이 지난 24일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에서 0-2로 뒤진 후반 인저리타임 중거리 슈팅으로 대회 첫 골을 터트린 뒤 기쁜 표정 없이 주먹만 불끈 쥐고 있다.
로스토프나도누 연합뉴스
우리 대표팀은 ‘평행이론’(서로 다른 시대를 살면서도 운명이 같은 패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이론)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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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월드컵 2-3 패
1994년 미국월드컵 2-3 패 27일 오후 11시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을 앞두고 과거 월드컵 무대에서 독일과의 승부가 재조명되고 있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1·2차전 연속 무승부 뒤 독일과의 3차전에서 3-1으로 끌려가던 후반 홍명보가 두 번째 만회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1994년 6월 27일 미국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당시 우리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당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역대 최약체란 비아냥을 들었다. 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두 번째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먹고 탈락 위기에 몰렸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라크가 일본과 극적으로 2-2로 비긴 덕분에 천신만고 끝에 본선에 진출했다. 이번 대회 최종예선 마지막 두 경기를 비기고도 본선에 오른 지금 대표팀과 닮았다.

24년 전에도 볼리비아, 스페인, 독일과 한 조를 이뤄 많은 팬들이 16강 진출 가능성을 낮춰 봤다. 그런데 스페인과의 첫 경기, 상대가 간판 골잡이 살리나스를 빼고 굳히기에 들어가자 홍명보의 중거리 슈팅으로 주도권을 장악한 대표팀은 서정원이 후반 45분 극적인 동점골로 2-2 무승부를 일궜다. 첫 승 목표로 삼았던 볼리비아를 상대로는 사실상 경기를 주도했지만 결정력 부족으로 또다시 0-0으로 비겼다. 역대 월드컵 최초로 승점 2를 얻은 상태에서 많은 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침잠을 설치며 댈러스에서 열린 독일과의 경기 중계를 지켜보며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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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0-1패
2002년 한·일월드컵 0-1패 27일 오후 11시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F조 최종전을 앞두고 과거 월드컵 무대에서 독일과의 승부가 재조명되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전에서 미하엘 발락(가운데)이 결승골을 넣은 뒤 달려가고 있는 모습.
서울신문 DB
독일은 클린스만의 환상적인 퍼스트 터치에 이은 발리킥 선제골 등으로 3-0으로 멀찍이 달아났다. 하지만 대표팀은 적토마 고정운의 질풍 같은 측면 돌파, 이영진의 바지런한 오버래핑으로 후반 주도권을 완전히 되찾으며 황선홍과 홍명보의 연속 골이 터져 2-3까지 추격해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무1패로 결국 탈락했지만 당시 대표팀은 값진 투혼을 보여 줬다. 요즘 표현으로 ‘졌지만 잘 싸웠다’의 원조 격이었다.

공교롭게도 24년이 흐른 같은 날,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27일 밤 11시(한국시간) 카잔 아레나에서 16강 진출의 미약한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두 골 차 이상 이기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아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16강 진출 여부보다 선수들이 24년 전 선배들처럼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아붓길 바라고 있다.

한국은 역대 전적에서 독일에 1승2패로 뒤진다. 월드컵에서는 두 차례 만나 모두 졌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최인영 골키퍼를 대신해 장갑을 끼었던 경희대 재학생 이운재가 주전 장갑을 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전에서도 0-1로 졌다. 2004년 12월 부산 평가전에서는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이 골을 넣어 3-1로 이겼었다.

대표팀은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멕시코전 선발 11명은 실내 훈련만 소화했고, 벤치 멤버와 교체 투입된 선수 11명은 실외 훈련을 가졌다. 25일에도 초반 15분만 훈련을 공개했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종아리 부상 결장, 두 경기 연속 실책을 저지른 장현수(FC도쿄) 딜레마, 옐로카드를 받은 선수만 6명 등 악재가 널려 있다. 하지만 24년 전 그날처럼 열심히 뛰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상황이 오히려 반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24년 전 그날처럼만 해 준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2018-06-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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