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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멀어진 소리/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멀어진 소리/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8-06-17 21:08
업데이트 2018-06-1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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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책상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글자를 적자면 따각따각 연필심 부딪는 소리가 좋다. 우르르 말발굽 소리를 날리고 마는 컴퓨터 자판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나무와 종이와 연필의 합주는 밤 깊어 주옥같아진다.

이십년 전쯤 살았던 길갓집이 자주 그립다. 산책로 초입이어서 발소리에 새벽잠을 깨고는 했다. 담벼락 아래 쉬어 가던 노부부가 있었다. 달팽이처럼 걷는 할아버지는 더 느린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두런두런 담을 넘던 말소리를 전부 불러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쉬지 않고 귀를 열어도 마음에 붙들리는 소리 한 가닥이 없다. 한밤중 무뚝뚝한 연필심 소리에나 고작 나는 내 마음을 듣다 만다. 오래전 노부부의 발소리를 떠올려야 진심을 다하는 마음을 겨우겨우 짐작만 한다.

잠귀를 열어 주던 청청한 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전속력으로 부서지는 소음 말고, 깊이 머물고 오래 감돌아 맺힌 데 없이 순한 말과 소리들.

무당벌레 두 마리가 형광등을 밤새 뱅뱅거릴 눈치다. 길 잃은 녀석들이 반갑다. 왱왱대는 저 소리, 깜깜한 봄밤을 감돌아 오늘은 귀 맑혀 주는 소리.

2018-06-1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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