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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번째 아카데미 키워드는 ‘여성’

맥도먼드, 21년 만에 두 번째 여우주연상
‘쓰리…’서 세상과 싸우는 엄마로 열연
‘셰이프…’ 작품상·감독상 등 4관왕
“유리천장 사라져”… 미투 영향 강조도


‘외모로는 오랜 기간 할리우드에서 ‘결격’ 취급을 받아 온 배우가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이 됐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br>할리우드 AF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할리우드 AFP 연합뉴스
미국 영화계의 최대 축제인 아카데미 시상식의 꽃인 여우주연상 수상자를 두고 현지 언론은 이렇게 표현했다. 4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프랜시스 맥도먼드(61)에게 생애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연기 경력 34년차의 맥도먼드는 영화, 연극, TV드라마 등 장르를 자유로이 가로지르며 비중에 상관없이 작품마다 돋보이는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왔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셰이프 오브 워터’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br>할리우드 AF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셰이프 오브 워터’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할리우드 AFP 연합뉴스
올해 예순을 넘긴 그는 특히 나이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는 당당한 태도와 탁월한 연기력, 전통적인 여성상을 전복하는 맹렬한 여성 캐릭터로 다시 한번 오스카상을 거머쥐었다. 1997년 만삭의 경찰서장이라는 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역할을 열연한 ‘파고’(1996)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지 21년 만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생애 첫 오스카상을 차지한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먼.<br>할리우드 EPA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생애 첫 오스카상을 차지한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먼.
할리우드 EPA 연합뉴스
이날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이름이 호명되자 숏커트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무대에 오른 맥도먼드는 “클로이 킴이 동계올림픽 하프파이프를 뛰고 나서 아마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며 벅찬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모든 분야 여성 후보자들은 나와 함께 일어나 달라”며 동료 배우, 제작자, 촬영 스태프, 작곡가, 디자이너 등 영화계에 몸담은 여성들을 한꺼번에 일으켜 세웠다. 그는 “우리 모두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포용은 옳은 길”이라는 등의 열정적인 언사로 객석에 큰 울림을 전하며 올해 아카데미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여성’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아이, 토냐’의 앨리슨 재니.<br>할리우드 AFP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이변’ 없이 평단에서 예상했던 작품과 배우들이 골고루 상을 나눠 가졌다. 여우조연상을 받은 ‘아이, 토냐’의 앨리슨 재니.
할리우드 AFP 연합뉴스
맥도먼드가 처음 연기에 발을 들여놓던 1980년대만 해도 그는 폭력적인 남성 사회에 액세서리로 낀 여배우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많은 여배우들이 제 역할을 못 맡으며 사라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인간의 복합적이고 내밀한 감정을 절묘하게 드러내는 단단한 연기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찬사를 받아 왔다.

특히 그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쓰리 빌보드’에선 강간·살해당한 딸을 잃고 범인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엄마 밀드레드 역으로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분노와 슬픔, 절망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범인을 찾겠다는 투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며 신랄한 웃음까지 주는 압도적인 연기로 그는 일찌감치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으로 예상됐다.

‘쓰리 빌보드’의 감독인 마틴 맥도나도 ‘맥도먼드 없이 영화가 가능했겠느냐’는 질문에 이런 말로 그의 독보적인 입지를 강조한 바 있다. “밀드레드 역으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누가 있겠나. 아무도 없다. 인위적이거나 할리우드 스타다운 외모의 배우는 바라지 않았다. 노동자 계급을 감성적이지 않으면서도 가르치려 들지 않게 연기해 줄 사람이어야 했다. 그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다름’을 만들어낸 것은 현실에 깊이 발붙인 그의 연기관이 한몫한다.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하면 거절한다는 그의 이유가 대표적이다. “팬들에게 사인 요청을 받으면 ‘나는 비즈니스적인 부분에서 은퇴했다’며 ‘노’라고 말해요. 전 그저 연기를 하는 사람이거든요. 대신 전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고 그들과 함께 눈을 맞추고 포옹을 하죠. 전 사진이 찍히길 바라는 배우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교류에 한 부분이 되고 싶어 하는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코엔 형제 감독 가운데 형인 조엘 코엔 감독의 아내이기도 한 그는 1984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했다. 자신도 1살 반 때 입양된 그는 조엘 감독과의 사이에 파라과이에서 입양한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2011년 ‘굿 피플’에서 싱글맘 역할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2014년 HBO 미니시리즈 공동 제작과 주연을 맡은 ‘올리브 키터리지’로 에미상과 배우조합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오스카와 에미상,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모두 휩쓴 12번째 여배우이기도 하다.

올해 아카데미는 여전히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의 강력한 자장 안에 있음을 보여 줬다. 2년 연속 사회를 맞은 지미 키멜과 시상자 및 수상자들은 여성·외국인 등 소수자들의 권리, 다양성의 가치와 포용의 정신을 일깨우며 영화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여성·비(非)백인 차별, 트럼프 정권의 편협하고 폭력적인 행보를 날카롭고 위트 있게 꼬집었다.

키멜은 “우리는 하비 와인스타인을 축출했다”는 직설적인 언급으로 지난해 영화계에서 촉발돼 세계로 번진 미투 운동의 영향을 강조하며 “용감한 분들이 목소리를 내주셔서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특히 여성 감독과 여성 촬영 감독이 후보에 오른 것을 언급하며 “이제 더이상 영화계에 유리천장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여성 영화가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상을 골고루 가져간 것도 이런 흐름을 증명한다.

여우주연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선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런스는 “여성들은 영화 속 캐릭터로도, 스크린 밖에서도 어려움을 이겨내며 힘을 보여 줬다. 할리우드에 새로운 날이 밝았고 우리 앞엔 새로운 도전이 있다”는 말로 이를 강조했다. 관례대로라면 지난해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케이시 애플렉이 시상자로 나와야 했지만 그는 성추문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편 13개로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상을 가져갔다. 델 토로 감독의 수상으로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멕시코 출신 감독 3인방이 모두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게 됐다. 2014년에는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2015년·2016년에는 ‘버드맨’, ‘레버넌트’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2년 연속 감독상을 차지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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