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시민이 거대한 권력에 이용당했을 때, 그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환기하고 싶었어요. 우리 현대사만 봐도 그런 사람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대중들의 관심에선 잊히고 피해자들은 재판에 끌려다니며 평생 고생하고 아픔을 겪죠. 그런 지점에 대해 한 번쯤은 짚어 보고 싶었어요. ‘골든슬럼버’가 권력에 대한 평범한 시민의 반격이니까요. 억울한 일을 겪은 분들을 극장에 직접 초대하고 싶었는데 사회적, 정치적으로 왜곡되게 이슈화될까 봐 참았죠.”
영화에서 그는 성실하게 삶을 이어 온 택배기사였다가 한순간에 대선 후보 암살범으로 몰려 추격전의 먹이로 던져진다. 사람들을 순전하게 믿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몸에 밴 선한 택배기사 건우 역을 소화하기 위해 그는 체중도 8㎏가량 불리고 머리도 최대한 촌스럽게 볶았다.
“건우는 저와 닮은 면이 많더라구요. 저도 진짜 잘 살려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거든요. 데뷔 때 좌우명도 ‘남에게 상처주고 살지 말자’였어요. 한 번 정을 줬던 사람들과 멀어질 때 크게 마음 아파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그래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유독 잘 됐어요.”
‘1987’의 이한열 열사에 이어 ‘골든 슬럼버’의 권력에 일격을 가하는 소시민까지 그의 최근작들은 현시대의 목소리와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 “배우라는 것이 결국은 시대를 대변하는 직업이니 많은 분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그는 ‘1987’에 대해 정치적이라는 일각에 목소리에 대해서도 단단한 소신을 밝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또 당시를 객관적으로 보는 30대 후반의 남성,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왜 ‘1987’이 정치적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과거에 있었던 역사이고 팩트인데요. (정치적이라는 세력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해대니까 정치적이라고 하겠죠. 정의에 대해 말하는데 정치적인 게 어디 있겠어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강자가 약자에게 부당한 힘을 가하는 일은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데요.”
처음 원작 소설을 보고 머릿속에 그렸던 구상과 7년 만에 영화로 완성된 결과물은 서로 교감하고 있을까. “장단이 있어요. 일본 원작이 너무 마음 아프게 끝나서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했는데 그건 성공한 것 같고요. 좀더 다이내믹한 구성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늘 예산의 한계가 있으니 그건 아쉽죠. 원래 할리우드에서 탐내던 판권을 우리가 사온 건데 미국에서 찍었으면 얼마나 역동적이었겠어요.”
강동원의 진화는 계속된다. 현재 김지운 감독의 ‘인랑’을 촬영 중인 그는 3월부터 할리우드 영화 ‘쓰나미 LA’ 촬영에 들어간다. 영화 ‘콘 에어’, ‘툼 레이더’ 등을 연출한 사이먼 웨스트 감독의 신작으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쓰나미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덮친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다. 강동원은 수족관에서 일하는 서퍼로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는 정의로운 역할을 맡는다.
“영화에 관한 아이디어라면 늘 쟁여 놓고 있다”는 그는 직접 써 놓은 시나리오까지 품고 있다. ‘어떤 이야기냐’는 물음엔 손사래를 쳐도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는 정성껏 풀어놨다.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공개는 안 돼요(웃음). 가까운 미래와 휴머니즘을 다룬 이야기랄까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쓴 건데 개연성도 떨어지고 2주 만에 써서 그런지 못 봐주겠더라고요. 원래는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있어서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를 쓴 한 외국 작가에게 시놉시스를 간단히 써서 넘기기로 했어요. 쓰다 보니 70쪽이 됐는데 시놉시스를 보내겠다는 사람이 연락도 없고 70쪽이나 써서 보내면 깜짝 놀라겠죠?(웃음)”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