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사람들의 영화 같은 삶

입력 : 2018-02-02 22:48 ㅣ 수정 : 2018-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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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노명우 지음/사계절출판사/448쪽/1만 7800원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1960년대 경기 파주시 광탄면 삼거리 마을에 살던 노 교수(아랫줄 왼쪽 두 번째)의 가족 사진.  사계절출판사 제공

▲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1960년대 경기 파주시 광탄면 삼거리 마을에 살던 노 교수(아랫줄 왼쪽 두 번째)의 가족 사진.
사계절출판사 제공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이던 노 교수가 어머니가 운영하던 무지개 다방 앞에 서 있다.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무지개 다방에 들러 어머니에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고 집에 갔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이던 노 교수가 어머니가 운영하던 무지개 다방 앞에 서 있다.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무지개 다방에 들러 어머니에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고 집에 갔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 관광버스 안에 앉아 있는 노 교수의 부모님. 사계절출판사 제공

▲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 관광버스 안에 앉아 있는 노 교수의 부모님.
사계절출판사 제공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1995년쯤 파주 광탄성당에서 노 교수의 아버지가 영세를 받던 날. 사계절출판사 제공

▲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에게 아버지 노병욱씨와 어머니 김완숙씨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그 당시 보통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1995년쯤 파주 광탄성당에서 노 교수의 아버지가 영세를 받던 날.
사계절출판사 제공

영웅과 범인(凡人)의 차이 중 하나로 ‘기록의 유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을 구한 사람에 대한 칭송은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널리 전해지는 법이다. 영웅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기 이름을 또렷이 새기는 반면 필부의 지난한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24년 충청남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한 남자와 1936년 서울 종로구에서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난 한 여자의 삶도 어쩌면 ‘그저 그런’ 인생 중 하나로 묻힐 뻔했다. 역사라는 큰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두 사람의 삶은 아들이자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교수를 통해 되살아났다. ‘인생극장’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한 뒤 아들에 의해 비로소 자서전이 쓰인 셈이다.
인생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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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극장

저자가 부모의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인생의 심층을 들여다본 이유는 뭘까. 책 첫머리에 놓인 “말 없는 피조물은 의미되면서 구원을 희망할 수 있다”는 발터 베냐민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흔적 없이 사라진 무명씨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그들이 공유한 한 시대의 궤적을 살피는 일이다. 책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겪고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이룬 세대가 겪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개인의 삶으로 엮어 낸다. 다만 세상을 떠난 부모의 개인적인 기록이 많지 않은 터라 저자는 1920~70년대 풍속을 반영한 대중영화를 통해 그 시절을 추적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당시 유행을 따라 만주로 떠났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만주는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1942년에 나온 노래 ‘만주 신랑’의 ‘꿈 하나 잘못 꾸어 헝큰 청춘아 눈물도 웃음 되는 만주러라’라는 가사를 통해 만주를 향할 당시 아버지가 가슴에 얼마나 큰 꿈을 품었을지 짐작해 본다. 의지로 떠난 만주와는 달리 강제징용으로 나고야 일본군 병사로 징집된 아버지의 심정은 징용병이 황군이 되는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린 영화 ‘병정님’(1944)을 통해 느껴본다. 영화는 안심하고 자녀를 군대에 보내라고 부모를 설득하지만 누구도 제국의 질서에 얽매이는 것을 반가워했을 리 없다.

한편 당시 국민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전쟁통에 고아가 된 어머니는 전쟁이 끝날 무렵 아버지와 결혼해 파주 미군 기지 근처에서 미장원을 열고 ‘양공주’의 머리를 말았다. 어머니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나 ‘또순이’(1963)의 주인공처럼 그 시절 권장되었던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그대로 따른 전형적인 한국 여성이었다. 큰소리치면서도 모든 것을 책임지지 못하는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았고 그저 내조에 충실했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내는 것. “애비가 못 배웠으면 자식들이라도 가르쳐야지”라는 영화 ‘수학여행’(1969)의 대사처럼 공부가 출세의 수단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저자의 부모가 정착한 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950~70년대 세상물정이다. 달러를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이곳에서 아버지는 사진관과 미군의 유흥공간인 ‘레인보우 클럽’을 열어 달러를 쓸어 담는다. 미군 부대가 철수한 뒤 양공주라는 ‘달러의 파이프라인’이 사라지자 ‘레인보우 클럽’은 한국 군인과 면회객을 대상으로 하는 ‘무지개 다방’과 ‘무지개 홀’로 모습을 바꾼다. 개인들의 선택에 따라 변모하는 파주라는 공간은 당시 체면보다 생존이 중요했던 전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저자는 부모의 자서전을 끝맺으면서 부모가 살았던 시대를 회고하는 일이 과거에 머무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단순히 지난 시간을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라는 것. “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432~433쪽)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2018-02-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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