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새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해 말 위안부 합의 검토 결과보고서 발표에 이어 새해 우리 정부가 내놓은 후속 조치로 한·일 간 공수 전환이 일어났다. 한국 정부는 외교해법이라는 이름의 꼼수를 주고받은 끝에 얽힐 대로 얽힌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정의로운 해법으로 명예롭게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일본에 제공했다.
결과보고서는 정의로운 해결 원칙과 국제정치 현실 사이에서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여 훼손된 피해자 중심주의의 복원과 대외관계 전반을 고려한 균형 있는 외교를 동시에 주문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 그리고 금전적 조치라는 3대 핵심 사항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이전’, ‘국제무대에서의 상호 비난, 비판 자제’라는 숙제를 안게 돼 피해자 중심주의 해결이라는 원칙이 훼손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이 고위급 비밀접촉에서 확정되었고, 그 결과의 일부가 ‘비공개’를 전제로 합의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합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흠결이다.
다음날 발표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단호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의 선택지가 매우 협소해졌지만 흠결이 확인된 이상, 대통령이 그에 상응하는 한국 정부의 원칙적 입장을 천명한 것은 당연한 도리였다.
새해 들어 원칙과 현실 사이의 착지점은 급격히 좁아졌다. 대통령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청와대에 모시고 그 목소리를 직접 확인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동시에 남북화해 국면이 열리면서 주변국 협조가 절실해졌다.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한국의 외교력을 크게 약화시킬 우려가 있었다.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 입장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아시아 평화구상을 실현하는 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키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 대신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엔을 국고로 충당한다는 대안이 피해자 중심주의 구현의 지렛대로 제시되었다. 10억엔의 사용을 위해 일본과 협의하겠다는 것은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10억엔의 의미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에서 이 금전적 조치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표시이며 책임 이행에 따른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확인되면 합의는 피해자 구제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서 온전히 이행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한국 정부는 거의 죽어 가던 합의를 재생시켜 합의 완성의 기회를 일본에 제공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 기회를 걷어찰 경우 합의는 사문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이행이 지체되어 사문화되는 합의는 허다하다. 1956년의 소·일 공동선언이 그중 하나다. 선언을 통해 소련과 일본은 국교를 정상화한 뒤 교섭을 실시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이와 동시에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남쿠릴 4개 섬 중 2개 섬을 소련이 일본에 반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은 국내 여론에 밀리면서 4개 섬의 동시 반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련과 이를 계승한 러시아는 공동선언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어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2년의 북·일 평양선언도 사문화 일보 직전이다. 이 선언의 핵심은 북·일이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하고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이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2002년 가을, 일본은 일시귀국한 납치 일본인 5명을 영주귀국시켰다. 북·일 간의 합의에 위반한다고 하여 일단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일본 외무성의 신중론을 질책하며 ‘국가의 의지’로 이들의 영주귀국을 고집하여 실현시킨 사람이 당시 관방부장관이던 아베 신조 총리 자신이었다.
위안부 합의 이행을 위한 본인의 책임은 제쳐두고 한국의 태도만 문제 삼는 아베 총리의 태도는 내로남불이다.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것인가, 완성시킬 것인가. 일본 정부의 선택이 남았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 그리고 금전적 조치라는 3대 핵심 사항에서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 그럼에도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이전’, ‘국제무대에서의 상호 비난, 비판 자제’라는 숙제를 안게 돼 피해자 중심주의 해결이라는 원칙이 훼손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내용이 고위급 비밀접촉에서 확정되었고, 그 결과의 일부가 ‘비공개’를 전제로 합의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합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흠결이다.
다음날 발표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단호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의 선택지가 매우 협소해졌지만 흠결이 확인된 이상, 대통령이 그에 상응하는 한국 정부의 원칙적 입장을 천명한 것은 당연한 도리였다.
새해 들어 원칙과 현실 사이의 착지점은 급격히 좁아졌다. 대통령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청와대에 모시고 그 목소리를 직접 확인했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동시에 남북화해 국면이 열리면서 주변국 협조가 절실해졌다. 합의 파기나 재협상 요구는 한국의 외교력을 크게 약화시킬 우려가 있었다. 파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 입장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아시아 평화구상을 실현하는 데 우리가 주도적으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키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 대신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엔을 국고로 충당한다는 대안이 피해자 중심주의 구현의 지렛대로 제시되었다. 10억엔의 사용을 위해 일본과 협의하겠다는 것은 재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10억엔의 의미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에서 이 금전적 조치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 표시이며 책임 이행에 따른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확인되면 합의는 피해자 구제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서 온전히 이행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한국 정부는 거의 죽어 가던 합의를 재생시켜 합의 완성의 기회를 일본에 제공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 기회를 걷어찰 경우 합의는 사문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이행이 지체되어 사문화되는 합의는 허다하다. 1956년의 소·일 공동선언이 그중 하나다. 선언을 통해 소련과 일본은 국교를 정상화한 뒤 교섭을 실시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이와 동시에 영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남쿠릴 4개 섬 중 2개 섬을 소련이 일본에 반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은 국내 여론에 밀리면서 4개 섬의 동시 반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련과 이를 계승한 러시아는 공동선언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어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2년의 북·일 평양선언도 사문화 일보 직전이다. 이 선언의 핵심은 북·일이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하고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이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사일 실험을 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다. 2002년 가을, 일본은 일시귀국한 납치 일본인 5명을 영주귀국시켰다. 북·일 간의 합의에 위반한다고 하여 일단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일본 외무성의 신중론을 질책하며 ‘국가의 의지’로 이들의 영주귀국을 고집하여 실현시킨 사람이 당시 관방부장관이던 아베 신조 총리 자신이었다.
위안부 합의 이행을 위한 본인의 책임은 제쳐두고 한국의 태도만 문제 삼는 아베 총리의 태도는 내로남불이다.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것인가, 완성시킬 것인가. 일본 정부의 선택이 남았다.
2018-01-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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