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만화가의 일과 삶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위근우 인터뷰와 글/남해의봄날/220쪽/1만 5000원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만화책과 피규어로 가득찬 이종범 작가의 서재, 이동건 작가가 만화 ‘유미의 세포들’을 그리고 있는 장면. 이종범 작가의 만화 기획서. 포털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 ‘어쿠스틱 라이프’를 스크린으로 보고 있는 난다 작가의 뒷모습.
남해의봄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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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사로잡는 만화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서사’, 각자의 개성 있는 세계관이 녹아 있는 독특한 이야기들 아닐까.
일상툰 작가인 난다는 서사를 사건의 힘에 의지하지만 반전은 있다.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다. 소소한 일상 경험들을 캡처하듯 만화 속에 붙잡아 서사적으로 변용한다. 난다의 미덕은 균형 감각이다. 특별한 감성을 드러내면서도 ‘자기 경험’에 매몰되지 않는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안기는 이율배반적인 충족감이다.
대학에서 전공한 심리학을 만화 소재로 삼는 이종범 작가는 각 스토리를 구간별로 해체하는 편집증적인 방식의 이야기 설계를 선호한다. 그의 대표작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한 줄의 메모에서 출발했고 캐릭터와 서사는 주제 의식에 충실하게 부합했다. 이런 작업 방식에 대해 이종범 작가는 ‘배가 산으로 가는 식’의 실패 확률은 낮은 작법이라고 자신한다.
출판 디자이너에서 만화가로 전업한 김정연 작가는 서사적 명료성을 중시한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상황과 연출, 대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바대로 전달하는 것’, 이건 말로 표현하면 쉽지만 작법으로 실행하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작품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작품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 느껴지는 동시대 또래 여성들의 목소리에 공명할 줄 아는 작가만의 섬세한 공감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지난해 한국만화가협회로부터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한 이동건 작가는 문제의식과 작가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저자는 여성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유미의 세포들’이 성장 서사의 구조를 갖는 건 작가 스스로 ‘요령’이라고 말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관심사가 개입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만화가가 되는 방식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전통적인 입봉 경로인 공모전뿐 아니라 포털의 웹툰 2부리그(조석 작가)나 인터넷 커뮤니티(이말년 작가), 블로그(박수봉 작가)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연재로 ‘2017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한 수신지 작가 사례까지 다양한 경로를 참고하라고 말한다.
허영만 화실의 문하생으로 만화 인생을 시작해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윤태호 작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그는 “노력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 내가 나아갈 길이 보인다”고 강조한다. 윤 작가는 ‘핑퐁’의 마츠모토 타이요나 ‘아키라’의 오토모 카츠히로처럼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창조형 작가보다는 노력을 통해 탄탄해지는 완성형 작가를 많이 키워낼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본다.
저자는 만화가에 대해 “새로운 플랫폼과 시장에서 자신들이 직접 룰을 만들고 또 그 룰을 폐기하거나 확장하는 능동적 이야기꾼”이라고 정의하며, “만화가가 큰 인기와 관심의 대상이 된 건, 그들이 동시대성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유연한 창작집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7-12-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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