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난징, 위안부 합의/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난징, 위안부 합의/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황성기 기자
입력 2017-12-14 22:34
수정 2017-12-1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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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2월 13일은 중일전쟁 전선이 상하이에서 옮겨 와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국민당)의 수도 난징이 일본군에 함락된 날이다. 그로부터 2개월간 중국군 패잔병과 포로, 민간인 30만명이 일본군 총칼에 희생됐다는 게 중국 주장이다. 2015년에는 ‘난징 대학살 문서’가 유네스코 기록유산에도 등재됐다. 하필 ‘난징 80주년’인 이날 중국 국빈 방문을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80주년 추모식에 참가하느라 난징으로 이동해 문 대통령의 뻘쭘하고도 주인 없는 ‘베이징 입성’이 됐다.
문 대통령은 재중국 한국인 간담회에서 제국주의의 고난, 항일투쟁을 함께 겪은 중·일 공통의 체험을 언급한 뒤 “깊은 동질감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일전쟁의 당사국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 언급이라 이례적이었다. 방중 외교 준비팀은 일본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난징대학살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국가 제삿날에 국빈으로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불편했을 수 있다.

난징 추모식은 인상적이었다. 시 주석이 지켜보고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정성 주석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중·일 인민의 근본이익에서 출발해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로 나아가며, 친성혜용(親誠惠容·친밀·성의·호혜·포용) 원칙에 따라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심화해 나가겠다.” 1972년의 국교정상화 때 저우언라이 총리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에게 우호를 위해 중일전쟁 배상 청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연장선이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3억엔의 배상금과 랴오둥반도, 대만을 받아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3억엔은 당시 일본 정부 한 해 예산의 3배 정도였다. 올해 일본 예산 97조엔을 감안하면 300조엔의 거금이다. 같은 날 도쿄에서는 방위상이었던 자민당의 이나다 도모미 의원이 참가한 ‘난징전투의 진실을 추구하는 모임’이 열렸다. 극우세력은 난징대학살이 중국의 정치선전에 불과하며 허구라는 입장을 취한다. 일본에서는 난징대학살을 ‘난징사건’으로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 검증팀이 곧 결과를 발표한다. 잘못된 합의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 검증인 만큼 결과는 뻔하다. 문제는 다음이다. 대선 전 위안부 문제 재교섭을 공약한 문 대통령이다. 재교섭은 양국 관계 파국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난징대학살에 동병상련을 느꼈다고 했으니, 중국처럼 미래지향적일 수 있을까. 어려운 선택이 남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17-12-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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