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대신 치유… ‘타투’ 합법화 길 열리나

혐오 대신 치유… ‘타투’ 합법화 길 열리나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7-09-10 22:08
수정 2017-09-10 23:07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화상·수술 자국 덧입히고 가족·반려 동물 이름 새겨

국내선 의료인만 시술 가능
11월 관련 법안 발의 예정
청소년 모방 등 진통 우려


대학원생 이모(28·여)씨는 최근 종이 한 장을 들고 서울 강남의 한 타투(문신)숍을 찾았다. 이씨는 가져온 종이를 타투이스트(문신시술가)에게 건네며 “거기에 적힌 그대로 손목에 새겨 달라”고 주문했다. 종이에는 ‘○○야, 사랑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바로 이씨 어머니의 친필이었다. 이씨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지 확대
수술 자국에 문신을 덧입히는 ‘커버업 타투’가 유행이다. 복부의 수술 자국 위에 별과 십자가 모양의 문신을 새긴 모습. 한국타투협회 제공
수술 자국에 문신을 덧입히는 ‘커버업 타투’가 유행이다. 복부의 수술 자국 위에 별과 십자가 모양의 문신을 새긴 모습. 한국타투협회 제공
과거 조직폭력배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문신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사회적으로 점점 약화돼 가는 분위기다. 특히 인기 연예인들이 문신을 많이 하면서 20~30대 젊은층이 문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 확대
수술 자국에 문신을 덧입히는 ‘커버업 타투’가 유행이다. 오른쪽 팔의 화상 흉터를 장미꽃 모양 문신으로 가린 모습. 한국타투협회 제공
수술 자국에 문신을 덧입히는 ‘커버업 타투’가 유행이다. 오른쪽 팔의 화상 흉터를 장미꽃 모양 문신으로 가린 모습. 한국타투협회 제공
최근에는 단순히 ‘멋’이나 ‘개성’이 아니라 ‘치유’를 위해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지문을 몸에 새기거나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노란 리본을 몸에 새긴 사람도 있다. 가수 지코는 어머니의 젊었을 적 얼굴을 왼쪽 가슴에 새기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다. 반려 동물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강아지 사진이나 이름을 손목이나 등에 새기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이미지 확대
수술 자국에 문신을 덧입히는 ‘커버업 타투’가 유행이다. 손목에 난 흉터 위에 연꽃 모양 문신을 새긴 모습. 한국타투협회 제공
수술 자국에 문신을 덧입히는 ‘커버업 타투’가 유행이다. 손목에 난 흉터 위에 연꽃 모양 문신을 새긴 모습. 한국타투협회 제공
흉터 위에 문신을 덧입히는 ‘커버업 타투’도 유행이다. 제왕절개, 맹장, 유방암 수술 자국부터 화상 흔적까지 다양하다. 가수 효린은 어릴 적 담도폐쇄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수술을 받은 자리에 십자가 문신을 새겨 상처를 극복했다.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나 정치인들은 눈썹 문신을 통해 이미지 쇄신을 꾀하기도 한다. 9년차 타투이스트 김재곤(40)씨는 10일 “평소 흉터 때문에 받던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게 돼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문신 시술 비용은 크기에 따라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 정도다. 서울에서는 강남과 이태원 등에 ‘타투숍’이 몰려 있다. 현재 전업 타투이스트 수는 5000명 정도 되며, 겸업까지 포함하면 약 2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문신은 현행 의료법상 의료인만 시술을 할 수 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하는 모든 문신이 불법이라는 의미다. 송강섭 한국타투협회장은 “전 세계가 타투를 예술 행위로 인정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만 타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국내 타투이스트는 세계 최고 기술을 가졌는데도 범법자 신세”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문신 합법화 논의가 한창이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는 11월 ‘문신사법 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타투이스트에게 의료 면허를 취득하게 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면서 “관련 자격증 제도와 안전 요건 등의 규정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과하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문신을 한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할 때 테이프로 문신을 가릴 만큼 아직은 문신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모방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2017-09-11 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