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무죄, 무고도 무죄… ‘협박용 신고’ 키웠다

성폭행 무죄, 무고도 무죄… ‘협박용 신고’ 키웠다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7-08-10 00:40
수정 2017-08-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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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 범죄 5년 새 32% 증가…실형 사례 적어 악용 잇따라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갔어요. 빨리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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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0시 15분 서울 서초경찰서에 성추행 사건 신고가 접수됐다. 범행 장소는 지난해 5월 ‘묻지 마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역 인근의 남녀 공용 화장실이었다. 신고자인 20대 여성 A씨는 한 상가의 점장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는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경찰이 “신고 내용과 다르지 않으냐”고 묻자 A씨는 돌연 사복을 입은 경찰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했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A씨가 머물렀던 그 시각에 화장실에 드나든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A씨의 신고가 명백한 무고죄에 해당하지만 ‘취중 착각’이라고 보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선량한 사람을 가해자로 모는 ‘무고 범죄’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고죄’ 발생 건수는 3617건으로 집계됐다. 2012년 2734건에서 5년 사이 32.3% 증가한 수치다. 무고죄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적다 보니 ‘생사람 잡기식’의 악의적인 허위 고소가 잇따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없는 죄’라는 이유로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종결짓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한 성범죄 사건 가운데 ‘혐의 없음’ 처분 비율은 36.1%로 전체 사건의 ‘혐의 없음’ 처분 비율 25.5%보다 10.6% 포인트 높았다.

지난 4월 20대 여성 B씨는 “클럽에서 만난 같은 또래 남자한테 강간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CCTV 영상에는 B씨가 적극적으로 남성의 몸을 끌어안고 서울 서초동의 한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B씨는 잠자리를 한 다음날 아침 남자가 먼저 떠나버린 것에 화가 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허위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B씨를 ‘혐의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해 8월 20대 여성 C씨도 한 남성의 집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합의하에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C씨는 남성과의 마찰로 허위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B씨와 C씨에 대해서는 모두 무고죄가 성립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다 보니 사건 처리가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무고 혐의가 적용되는 허위 신고는 ‘협박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고죄 성립 범위를 두고 논란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성범죄 관련 무고죄의 범위를 넓히면 피해자들이 신고하기를 주저하게 돼 범죄가 은폐될 우려가 있다. 반면 무고죄를 보수적으로 적용하면 ‘아님 말고식’ 신고가 빈발해 선의의 피해자가 다량 양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2017-08-1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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