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말이 발이 되는 인간사/김민정 시인

[문화마당] 말이 발이 되는 인간사/김민정 시인

입력 2017-07-12 18:08
수정 2017-07-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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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인
김민정 시인
 귀에 와 박히는 말이 무서운가, 등짝을 차는 발이 무서운가. 이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얼마 전 산문집을 펴낸 박준 시인의 책을 보다 이런 구절 앞에 무릎이 툭 꺾이고 말았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그래, 그래서들 유언이라는 단어만 봐도 화들짝 놀라 자세들 고쳐 잡고 표정 굳어지는 거겠지.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 유언일진대 장담 못 할 생과 사의 나날 속에 매일같이 시소를 타는 것이 작금의 우리들 아닌가.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가는 이의 전화번호는 비교적 쉽게 지웠던 반면 가야할 때가 아직 아닌 것 같은데 가버린 이의 전화번호는 휴대전화를 여러 차례 바꾸는 과정 속에서도 제법 단단히 지켜왔던 것 같다.

 이태리 다녀와서 한잔해요, 매화가 일찍 피었기에 아래에서 사진 올립니다, 위암 권위자 잘 아는 사람 있어? 충무로 지나갈 일 있으면 늙은이네 가게에 좀 들러요, 같은 더는 이어지지 않는 말들을 가끔 꺼내보며 나는 내가 지상에 남길 마지막 말이 무엇일까 가늠해보고는 한다. 되도록 따뜻하고 몽실몽실 달콤한 솜사탕 같은 말이었으면 하는데 오늘 하루도 지껄인 말의 태반이 욕이었으니 나이를 먹을수록 왜 똥배와 욕설만 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만, 이도 거짓이겠다. 왜 모르겠는가, 다 알지, 실은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말이었을 터, 그 이기심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는지 찬찬히 아주 어렸던 날부터 되짚기 시작하면 조금씩 상기도 될 터, 그때마다 꺼내들게 되는 것이라면 아마도 종이렷다. 종이. 하얀 텅 빔의 무게감. 누구나 그 앞에 서면 앞으로 전력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뒤로 걷기를 하게 되는바, 그래서 글을 쓰는 이들이 나는 옳습니다, 가 아니라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저마다의 출발 지점에서 자유자재로 펜을 갖고 놀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

 이렇듯 내뱉을 때는 남의 입 같다가도 주워 담을 때면 내 입 같아지는 말, 그 말의 무시무시함을 요즘 한 국회위원에게서 다시금 느낀다. 이언주 의원의 얘기다. 그가 뱉은 말들이야 뉴스로 쏟아지고 있으니 새삼 상기시킬 필요는 없겠으나 분명 이언주 의원도 자신의 이름을 검색창에 쳐볼 텐데 이언주 막말, 저를 수식하는 표현 중에 그런 연관 검색어를 보면 어떤 심정이 들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니까 우리는 잘못할 수 있다. 사람이니까 우리는 잘못을 시인하며 용서도 빌 수 있다. 사람이니까 우리는 용서를 받고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죄를 사하는 데 있어 미덕을 두루 갖춘 민족이기도 하지 않은가. 세상에 ‘누구보다 못한’이라는 비유로 폄하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기본적이고 이 당연한 사안들을 도통 고려할 줄 모르는 이언주 의원의 일관된 태도를 보며 나는 그이에게 친구가 있을까, 대뜸 그 호기심부터 들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친구, 나를 울게 하는 친구, 나를 주저앉게 하는 친구, 그리하여 나를 돌아보게 하는 친구, 그 친구가 없다면 오늘밤 집에 가는 길에 A4 몇 장 사들고 가보심이 어떨는지. 마주한 백지 속에 진짜배기 내가 있을 텐데, 그 자신을 끄집어내서 백지 위에 연필을 깎듯 낱낱이 고했다면 우리는 그 면면을 사심 없이 보고 격의 없이 이해도 했을 텐데 그러니까 그이가 우리를 좀 믿어 봐도 좋았을 것을…… 사과야말로 타이밍이라지 않는가. 바야흐로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이다.
2017-07-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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