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반대·창조론… 과학 공격하는 ‘사이비 과학’

백신 반대·창조론… 과학 공격하는 ‘사이비 과학’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7-07-11 18:06
수정 2017-07-1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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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과학 범람 원인·함정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2012년 6월 5일자에 “한국이 창조론자의 요구에 항복했다”고 대서특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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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창조론자들은 인간과 천지만물이 신의 손길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지만 진화론자들은 생존경쟁에 적합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네이처 제공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창조론자들은 인간과 천지만물이 신의 손길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지만 진화론자들은 생존경쟁에 적합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네이처 제공
한국 기독교 단체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가 진화론의 대표적 근거인 시조새와 말의 진화 같은 부분을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삭제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과학자들이 진화론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교육과학기술부도 이를 수용함으로써 일단락됐다.

5년이 지난 지난주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진화론’에 대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진화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기 때문에 장관 후보자로서 그 부분을 밝히기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했다가 뒤늦게 말을 바꾸는 해프닝이 있었다. 유 장관은 “종교적 신념을 묻는 질문으로 착각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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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네이처 제공
2012년 6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는 ‘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네이처 제공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 창조과학 모두 한 뿌리로 이들은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내부 논쟁을 ‘아전인수’식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지적이다. 진화학자들은 “진화론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논쟁은 진화론을 전제로 하고 이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진화론 내부에서 논의되는 것들을 마치 진화론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 공격하는 것은 과학이 뭔지를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의 시대에 사이비 과학이나 가짜 과학이 불신을 조장하며 공격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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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학적 사실인 지구온난화를 반대하고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끊임없이 가짜 과학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다. 네이처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과학적 사실인 지구온난화를 반대하고 백신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끊임없이 가짜 과학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모양새다. 네이처 제공
미국은 대통령이 앞장서서 과학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잘못된 연구로 판명나 철회된 논문을 바탕으로 백신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믿고 있다. 실제로 백신안전위원장에 백신 회의론자를 앉히는 등 백신 반대운동에 앞장서는 분위기다. 여기에 지구온난화 역시 미국의 산업적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중국의 음모이며 과학자들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얼마 전에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미국 로욜라대 물리학과 그레고리 데리 교수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 비과학은 증거와 개연성 여부, 변화의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과학은 새로운 관찰과 해석을 토대로 세계와 과거에 대한 지식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다듬는다는 점에서 누적과 진보의 성격을 가진다. 즉 실험과 확증, 반증을 통한 지식의 누적을 통해 변해 간다. 그렇지만 사이비 과학은 변화의 동력이 개인이나 특정 단체의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이유 때문에 급작스럽게 나타난다. 과거를 토대로 지식의 축적을 허용하는 목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패러다임과는 공존할 수 없으며 해당 분야 내부에서 논쟁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학잡지 ‘스켑틱’의 편집자인 마이클 셔머 박사도 “사이비 과학이 판을 치는 이유는 바로 지금이 과학의 시대이기 때문”이라며 “사이비 과학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최소한 과학의 겉모습이라도 띠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아닌 영역의 것에도 과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과학의 최종 결과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식 생산과정을 무시하는 사회에서는 반과학, 사이비 과학이 유행하기 쉽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의 경우 1970~1980년대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과학기술이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경제발전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이 유행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과학사학자는 “창조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 중에도 과학자가 많은 이유는 이들이 최종적 결과와 합리적 답을 찾는 것에만 익숙하다 보니 진화의 지난한 과정과 우연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도 “현대 과학에서 검증을 위한 치열한 논란과 논쟁은 일상적인 것이며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라면서 “논쟁과 논란을 구실로 현대 과학을 부정하려는 비과학적 주장과 시도들은 결코 과학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2017-07-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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