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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생지옥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오세진 기자
입력 2017-06-26 10:00
업데이트 2017-07-0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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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30년 지나도 진상규명·보상 안돼

“상식이 통하는 이 사회에서 지금 현재까지도, 저는 사람 같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최승우씨가 지난 23일 직접 손으로 쓴 편지의 첫말이다. 최씨는 30여년 동안 가슴 속에 꼭꼭 숨겨둔 이야기들을 A4 용지 3장에 걸쳐 풀어냈다. 그는 “제 삶은 14살(만으로 13살) 아이에서 멈춰져 있다”고 토로하며 자신의 삶이 중학교 1학년 시절에 멈춰진 사연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부산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끌려온 어린이들
부산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끌려온 어린이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1969년도에 부산에서 태어나 여느 아이들처럼 어머니의 손에서 곱고 예쁘게 자랐습니다. 그런 아이가 1982년 3~4월의 어느 날 중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파출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무섭게 생긴 경찰관이 (중략) 아무런 이유없이 ‘형제복지원’이란 곳으로 보내버렸습니다.”

당시 순경은 최씨를 파출소로 데려가더니 무작정 최씨의 가방을 뒤졌다. 가방 안에서는 빵과 우유가 나왔다. 순경은 “어디서 훔쳤노? 훔친 거 다 안다. 바른 말 해라!”라고 겁박했다. 하지만 빵과 우유는 당시 학교에서 급식으로 받은 것이었고, 나중에 배고플 때 먹기 위해 가방에 넣어둔 것이라고 최씨는 울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순경은 최씨의 말을 믿지 않고 “훔친 것 아니냐”고 끝까지 몰아세웠다. 마지막에 가서는 라이터를 켜더니 최씨의 바지를 벗겨, 라이터를 최씨의 성기에다가 갖다 대면서 “바른 말 해라!”라고 소리쳤다. 순경의 고문이 너무 아파 최씨는 “제가 훔쳤습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순경은 어딘가에 전화를 했고, 조금 있다가 탑차가 한 대 도착했다. 순경이 최씨를 강제로 태운 차가 도착한 곳은 부산 북구 주례동 산18번지에 있던 사회복지시설 ‘형제복지원’이었다. 최씨의 삶의 무대가 생지옥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최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 생존자 중 한 명이다. 이 편지를 받을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최씨는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이 편지를 다른 피해 생존자들의 편지와 함께 문 대통령에게 오는 27일 띄울 예정이다.

1987년 1월 원장인 박인근(지난해 사망 당시 85세)씨의 구속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지 올해로 30년째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정부는 시민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로 연행하고, 복지원은 시민들을 감금해 국가의 방조 아래 강제 노역뿐만 아니라 구타·학대·성폭력·살인 등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형제복지원 사건 개요’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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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최승우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제공
신한민국당(신민당)이 1987년 발표한 ‘부산 형제복지원 신민당 진상조사 보고서’(신민당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당시 복지원에 수용된 인원만 최소 3164명이었고, 12년 동안 최소 513명이 희생됐다. 1980년 삼청교육 과정에서 사망한 54명의 열 배에 가까운 숫자다.

●감옥보다 더한 지옥…차라리 교도소에 갔으면”

군대식 체제로 운영된 복지원의 일상은 “감옥보다 더한 곳”이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차라리 교도소에 가는 게 낫겠다는 반응이 나왔을 정도다. 아래는 지금까지 신민당 보고서와 일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알려진 복지원의 인권 유린 행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85.5. 입소한 강모씨 경우 눈이 찢어지고 소변에서 피가 나올 만큼 복부 구타(를 당해). 그는 이러한 폭행으로 50여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함.” (신민당 보고서)
“신입소대에서 처음 사람이 죽는 걸 봤습니다. 조장들이 신입 한 명을 담요에 싸가지고 조장부터 소대장, 서무가 합세를 해서 사람 하나를 그냥 지근지근 밟아버리더라구요. 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사람인데 눈이 휙 뒤집어지더니 동공이 하얗게 되고 입에서 거품이 질질 나오는 게 죽은 거 같았습니다.” (*최승우씨)
“노인들, 쉽게 얘기해서 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나 장애인은 그 안에서도 더 힘들었어요. (중략) 똥오줌 싸면 소대장이 머리채를 끌고 가요. 화장실 그 세멘 바닥으로 끌고 가갖고 그냥 찬물을 부어버려. (중략) 그것도 그냥 비누칠을 해서 닦아주면 모를까, 마포(걸레)에다 슈퍼타이를 부어가 엉덩이고 어디고 비벼요. 정말 못됐어요.” (*박순이씨)
“중등부소대 시절에 악명 높은 소대장이 하나 있었어요. 그 사람이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들을 밤에 잘 때 강간했어요. 한두 명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매일 돌아가면서요.” (*이향직씨)

하지만 사건이 알려진지 30년이 지나도록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역대 문민 정부도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여준민 사무국장은 27일 “정부가 1975년 발령한 내무부 훈령 제410호와 신민당 보고서, 당시 경찰이 불법 체포한 시민을 복지원에 넘길 때 작성한 신병인수인계서 등으로도 이 사건의 국가 책임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 생존자들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공포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구타 후유증으로 중증 장애에 시달리거나 우울증,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1년 수용돼 7년 동안 복지원에 갇혀 지낸 임영택씨는 “지금도 저는 공권력의 트라우마, 폐쇄된 공간의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지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도 경찰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하고, 숨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전했다.

사회의 무관심과 편견도 피해자들이 복지원의 악몽에서 못 벗어나는 이유다. 1983년부터 5년 동안 복지원에 감금됐던 고요환씨는 “한창 배워야 할 시기에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 배운 것이 없어서 직장에 다녀본 적이 없다”면서 “복지원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가정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또 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워 지금까지도 외롭게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강제노역의 모습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강제노역의 모습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부끄러워 숨겨왔던 기억, 이제는

그나마 한종선씨가 2012년 5월~2013년 2월 국회 앞 1인 시위를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실상을 알리고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쓰면서 숨죽이고 살던 많은 피해 생존자들이 어렵게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노력은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이하 피해자 모임)과 대책위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피해자 모임과 대책위는 토론회와 피해자 증언대회 등을 여러 차례 열어 우리 사회가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있다.

여 사무국장은 “박정희·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 통치 시절 가난하고, 연고가 없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고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감금한 시민들의 인권을 짓밟은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면서 “이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면 이와 유사한 성격의 인권 침해 사건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형제복지원 특별법안’(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이 법안은 진상 규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진상 규명 이후에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는 피해의 정도 등을 고려해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주거복지시설 등을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해자 모임과 대책위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토론회를 진선미 민주당·추혜선 정의당 의원 및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공동 주관한다.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형제복지원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27일 국회에서 열리는 이 토론회에는 피해 생존자들이 참석해 그들이 겪었던 참상을 직접 증언할 예정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토론회를 통해 피해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살펴보고 사건과 관련한 쟁점들을 정리한 뒤에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님, 저희들의 외침을 들어주세요”

피해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문 대통령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자격으로 신민당의 조사 작업에 참여한 인연이 있다. 국회의원 시절인 2014년 4월 국회에서 열린 피해자 증언대회에도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당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진상 규명을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그런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 부끄럽기도 하다”면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과 피해 실태들이 낱낱히 파헤쳐 지고, 당시에 고통받은 사람들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현 정부가 저지른 잘못은 아니지만, 군사독재 정권 때 있었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적폐였고, 그 적폐들이 저질러 놓은 국민의 피와 눈물, 아픈 역사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대승적 차원에서 끌어안아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씨의 편지글 중 일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구술 기록집 ‘숫자가 된 사람들’(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지음, 오월의 봄)에서 등장하는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 내용을 일부 수정·인용.

●용어설명

내무부 훈령 제410호 1975년 12월 15일에 발령된 훈령으로, 이름은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사회정화 작업’의 일환으로 적용된 이 훈령은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사람’을 ‘부랑인’으로 따로 규정했지만 사실상 모든 시민이 정부의 단속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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