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여전히, 앞으로도 영화는 극장에서/홍지민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여전히, 앞으로도 영화는 극장에서/홍지민 문화부 차장

홍지민 기자
홍지민 기자
입력 2017-06-15 17:56
수정 2017-06-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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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민 문화부장
홍지민 문화부장
며칠 전이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데 한 영화평론가가 강의형 교양프로그램에 나온 게 눈에 띄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대서사극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중 영국 정보국 장교 로렌스(피터 오툴)와 하리스 족장 알리(오마 샤리프)가 사막에서 처음 대면하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 멀리 이글거리는 지평선에서 보일 듯 말 듯 작은 점처럼 모습을 드러내며 사막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알리와 이를 지켜보는 로렌스를 교차편집해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3분 정도 롱테이크 형식으로 진행되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최고의 등장신으로 꼽힌다. 평론가는 대형 스크린이 아니라면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그리고 한마디.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권했다. 극장에서 봐야 잘 보이는 방식으로 감독들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는 명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랍 정세와 관련해 특별 임무가 주어진 로렌스가 성냥 불을 입으로 불어 끄자 마자 붉은 태양이 묵직하게 솟아 오르는 웅장한 사막의 모습으로 바뀌는 컷의 연결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리모컨을 꾹꾹 눌러 대던 손가락을 멈추고 평론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놓고 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 그린 평행선 때문이다. ‘옥자’에 600억원이나 투자한 넷플릭스 입장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기본이라 백번 양보해도 온라인 공개가 늦어서는 안 되고, CGV 등은 제아무리 봉 감독의 대작이라 해도 ‘선(先) 극장, 후(後) 온라인’의 룰을 깨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충돌은 영화를 처음 만나는 곳이 반드시 극장일 필요가 있느냐는 고민을 해 보게 만든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스마트TV, 태블릿, 스마트폰, PC 등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다. 넷플릭스가 지난 20년간 급성장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에게 좋은 쪽은 분명하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다. 그렇다고 일방을 편들고 싶지는 않다. 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모두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 각자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 이윤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최근 넷플릭스가 마니아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워쇼스키 자매 연출, 배두나 주연의 드라마 ‘센스8’ 시즌3 제작을 포기한 것도 그래서다.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워 머신’의 국내 언론 시사가 ‘옥자 사태’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CGV에서 열린 것도 그래서다.

분명한 것은 또 하나 있다. 극장에서 보는 ‘옥자’와 손 안에서 접하는 ‘옥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감독이 그렇게 찍었기 때문이다. 필름보다 더 필름 느낌을 주는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를 구해 촬영했을 정도다. 언제 어디서에서라도 편리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극장만큼 압도적인 경험을 제공해 주는 곳도 없다. 관객 대부분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감독이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하고 관객이 몰입해 작품에 빠져들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애쓴다면 멀티플랫폼 시대에도 극장을 찾는 발길이 잦아들지는 않을 것 같다. 광고를 줄이고, 마스킹 제대로 하고, 스크린 밝기도 적절하게 키우고, 냄새와 소리에 눈을 찌푸리지 않게 해 주고, 무엇보다 다양한 작품을 걸어 골라 볼 수 있게 해 주는 게 방법일 수 있겠다.

그렇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화를 처음 만나는 곳이 극장이었으면 좋겠다.

icarus@seoul.co.kr
2017-06-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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