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展
‘덕후’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일본어 ‘오타쿠’를 우리 식으로 바꾼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하위문화에 빠져 있거나 폐쇄적인 성향 때문에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자신의 관심 분야에 시간과 경험을 즐거이 투자해 전문적 지식이나 실력을 축적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한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이들의 열정과 전문성을 높이 사는 분위기도 확산되는 추세다. 파생된 단어들은 젊은이들 사이에선 일상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행위를 ‘덕질’, 자신이 덕후임을 밝히는 ‘덕밍아웃’, 덕질을 시작하는 것을 ‘입덕’, 덕질을 그만두는 것을 ‘탈덕’이라고 얘기한다.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전은 영상과 회화, 설치작품을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덕후문화를 조명한다. 초자연 현상에 몰입하는 가상 덕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조문기 작가의 영상물 ‘초자연현상 매니아 류혹성’.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전은 영상과 회화, 설치작품을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덕후문화를 조명한다. 10년 동안 자신이 수집해 사용한 휴대전화 액세서리를 보여준 박미나 작가.
예술가들의 대안적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 전시는 다양한 층위에서 덕후 현상을 들여다본다. “수집활동이 취미이자 창작의 시작이고 창작을 이어가도록 자극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김성재 작가는 ‘수집에서 창작으로’라는 제목으로 수년간 수집한 다양한 피규어들과 이를 응용한 창작 캐릭터를 선보였다. 박미나 작가는 10년간 수집하고 사용했던 휴대전화 액세서리에서 시대적 의미를 포착한다.
취미활동이 예술적 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기도 한다. ‘식물 덕후’ 김이박 작가는 그동안 식물과의 정서적 유대를 보여주는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의 프로젝트와 정보를 담은 아카이빙, 식물을 치유해 주는 식물요양소 등을 싱글채널비디오로 재구성해 보여준다. 플라이 낚시에 빠진 진기종 작가는 깃털, 나뭇가지와 같은 자연의 재료로 만든 가짜 미끼, 지도, 낚싯대 등으로 낚시꾼의 작업실을 재현했다. 작가는 자연을 모방해 만든 가짜 미끼로 실제 물고기를 잡는 플라이 낚시가 자신의 작업 개념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취미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영역으로 바라본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전은 영상과 회화, 설치작품을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덕후문화를 조명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마니아인 신창용 작가는 영화 ‘킬빌’의 한 장면을 그리고 ‘덕화’(덕후의 그림)라고 불렀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몰입하다’전은 영상과 회화, 설치작품을 통해 다양한 층위에서 덕후문화를 조명한다. 잡지 ‘더 쿠’에 실린 내용을 중심으로 스스로 어느 종류의 덕후인지를 알 수 있는 덕후 체험 프로그램을 관람객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프로젝트 갤러리2는 참여형 전시 ‘더 쿠 메이커’로 꾸몄다. ‘덕질’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시도하는 계간 독립잡지 ‘더 쿠’(The Kooh)에 소개된 덕질을 직접 체험해 보고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분야를 발견해 ‘덕밍아웃’하는 것이다. 이 잡지의 고성배 편집장은 “모든 사람이 덕후의 기질을 갖고 있다고 본다”면서 “흔히 ‘쓸모없는 짓’으로 여겨지는 분야나 행위를 진지하고 유쾌하게 수행하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8권이 발간된 잡지 ‘더 쿠’의 1호를 펼치자 안도현의 시를 패러디한 문장이 진지한 궁서체로 적혀 있다.
‘덕후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뜨겁게 덕질해 본 적 있느냐.’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7-04-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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