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리안 텐트/허수경
숨죽여 기다린다
숨죽여, 이제 너에게마저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척을 내지 않을 것이다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나가고
겹겹한 산에
물 흐른다
그 안에 한 사람, 적막처럼 앉아
붉은 텔레비전을 본다
마음이 썩는 곳은 어디인가. 열정의 불길이 휩쓸고 간 마음에 찾아오는 저 온전한 고요. ‘기다림’의 이유였던 ‘너’에게조차 ‘나’를 들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따라가 본다. 시인은 짧게 말한다. “버림받은 마음으로 흐느끼던 날들이 지났다”고. 그리하여 비로소 ‘겹겹’의 산중에서 썩은 마음이 ‘물’처럼 흘러내린다고. 그래서 이 시는 우연히 발생한 단면적인 서정이 아니라 겹겹으로 곰삭고 다져진 시간과 공간의 서사가 된다. 유랑의 먼 길을 돌아온 마음이 어느 순간 맞닥뜨린 찰나의 절대고독 같은 것. 그러나 정작 이 시가 숨 막히는 이유는 무심한 듯 던져 놓은 마지막 연에 이르러서다. 적막조차 생활로 받아 안는 저 무서운 고독의 이미지.
신용목 시인
2017-01-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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