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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안 입힌 ‘맨 전’ 올리나” 설 앞둔 주부들 한숨

“계란 안 입힌 ‘맨 전’ 올리나” 설 앞둔 주부들 한숨

입력 2017-01-19 09:56
업데이트 2017-01-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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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급등에 궁여지책 속출…가짓수·양 줄이고 소고기→돼지고기고기·계란 없는 ‘밀가루 동그랑땡’, 떡국 지단 버섯·유부로 대체

주부 박모(47·경기 고양) 씨는 명절 때마다 소 불고기 거리를 넉넉히 준비해 시댁에 갔지만, 이번 설은 좀 다르다. 소고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부족한 만큼 돼지고기로 채우기로 했다.

작년과 비슷한 돈으로 명절을 지내려고 하니 엄청나게 오른 물가를 감당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고기 살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장바구니 물가가 워낙 비싸져 예전 수준에 맞춰 설을 준비하는 건 여간 무리가 아니라고 주부들은 하소연한다.

박 씨는 “육류는 다른 품목에 비하면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전체 비용을 고려해 고기 종류를 조절했다”며 “방울토마토의 경우 1팩에 9천500원이나 하길래 일반 토마토로 바꾸려 했더니 4개에 8천원을 달라고 하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설이 다가오면서 차례상에 올릴 제수와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들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설 물가 안정 대책을 쏟아내지만, 물가 상승세는 멈출 줄 모른다.

노릇노릇한 색깔과 고소한 냄새로 명절 음식에 빠지지 않는 계란도 한 판(30개)에 1만원에 육박한 지 오래다. 이러다간 계란 옷 없는 ‘누드 전’을 부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돈다.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은 작년보다 상당 폭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물가협회가 전국 6대 도시 전통시장 8곳에서 20개 차례 용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차례상 비용이 4인 가족 기준 20만6천20원으로 지난해(19만5천920원)보다 5.2%(1만100원)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서는 차례상 비용(전통시장 기준)이 작년보다 8% 비싼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물가는 이보다도 훨씬 비싸다.

농수산물유통공사 가격통계(KAMIS)에서도 최근 물가는 평년(직전 5년 평균)과 비교해 가격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넘는 농산물이 많고, 두 배 이상 오른 품목도 적지 않다.

강모(54·여·충북 충주) 씨는 이번 설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고 가족이 먹을 음식도 가짓수와 양을 줄이기로 했다.

비용을 아끼려는 것도 있지만 이참에 명절 문화에 끼어 있는 거품을 빼 보자는 생각에서다.

강 씨는 “없어도 될 것 같은 음식은 차례상에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며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조상을 기리고 마음을 나누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명절 비용을 아끼려는 아이디어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속속 등장한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어머니들이 계란을 쓰지 않고 부쳐내던 동그랑땡(돈저냐)도 그중 하나다.

부침개를 부치고 남은 밀가루 반죽을 한 숟가락씩 떠서 프라이팬에 올린 뒤 얇게 저민 고추와 당파, 물에 불린 북어채를 얹어 구워내면 훌륭한 명절 음식이 됐다.

전 부칠 때 비싼 계란으로 옷을 입히는 대신 강황가루를 쓰고, 계란 말고 버섯과 유부를 떡국 지단으로 얹으면 좋다는 알뜰한 생활정보도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차례상에 바나나 같은 외국산 과일이나 피자, 햄버거 같은 서양 음식을 올려도 되느냐 하는 문제는 이미 해묵은 논쟁거리가 됐다.

전통 규범과 관습을 무시할 수 없지만, 중요한 건 조상을 기리는 마음 자세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음식은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식품 수급 여건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요즘, 전통 방식의 제수와 상차림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고 온 가족이 함께 추모하며 가정의 화목을 돈독히 하는 게 차례의 주목적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옛 선현들도 제사상 차림이나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오히려 헤픔과 지나침을 경계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시집가는 딸에게 써 준 계녀서(戒女書)에서 “제례는 정성과 깨끗함이 으뜸이며, 물 한 그릇이라도 빌리거나 얻어서 올리는 것이 아니다. 흉년이라도 거르지 말고 풍년이 들었다고 지나치지 말라”고 가르쳤다.

사상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명재 윤증(1629∼1714)도 제상에 손이 많이 가는 화려한 유과나 기름이 들어가는 전을 올리지 말고, 형편이 어려운 자손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제사를 간단히 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이 집안의 차례상은 지금도 제철 과일, 나물, 밥과 맑은국, 어포와 육포가 전부다.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차경희 교수는 “옛날에는 명절이 양껏 배를 채울 기회였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며 “제사는 간소하게 하고 음식도 먹을 만큼만 적당히 만들고, 가사 노동, 비용 분담에서 가족 간에 합리적 합의를 끌어내는 게 행복한 명절을 보내는 지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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