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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커버스토리] 입사하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워라밸’

[단독][커버스토리] 입사하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워라밸’

명희진 기자
명희진 기자
입력 2016-12-16 20:40
업데이트 2016-12-1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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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과 취업정보포털 사람인이 취업 준비생 4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다수는 국내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기업’으로 공기업과 정부부처 그리고 구글·다음·네이버와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정말 이들이 꼽은 기업(기관)의 직원들은 대기업 직원에 비해 일과 삶을 잘 조화시키며 살고 있을까. 근무경력 3~4년차인 공무원, IT업체 직원, 일반 대기업 직원의 하루 일과를 비교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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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야근요정 강도 높지만 휴식도 확실
프로그래머 “매주 4~5일씩 자정 야근도 불사”

“야근 없는 회사요? 제 별명이 야근요정입니다.”

4년째 유명 정보기술(IT) 업체에 다니는 박전산(28·가명)씨는 “출근 후 약 30분을 제외하면 온종일 허겁지겁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며 “한가할 때는 7시에 정시 퇴근을 하지만 바쁠 때는 매주 4~5일씩 오후 10시나 늦게는 자정까지 일한다”고 16일 말했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그의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다.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회사까지 1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9시에 집을 나선다. 그는 사람들이 대개 출퇴근 시간만 보고 IT업계를 여유로운 직장으로 착각한다고 했다. 매일 정해진 업무가 있는 일반 회사와 달리,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구현하는 등 프로그램 개발 업무는 퇴근 후에도 지속된다고 했다.

그는 기획회의나 보고서 작성으로 근무를 시작해 빈틈없이 빡빡하게 일을 한다고 전했다. 불필요하거나 늘어지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주어진 일을 기한 내에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라밸 기업’을 일이 적거나 야근이 적은 회사라고 한다면, IT업계는 절대 워라밸 기업이 아닙니다. 다만 한가할 때는 확실히 쉴 수 있도록 회사가 배려하는 것은 있죠. 예를 들어 아이가 아프다면 특별한 대면보고 없이 사유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보내면 됩니다.”

컴퓨터 앞에서 오래 일하는 직업이라 운동은 필수다. “매주 한두 번씩 퇴근 시간이나 점심 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에서 필라테스를 하고 옵니다. 야근할 때도 한두 시간 운동을 하는데 회사에서 눈치를 주거나 핀잔을 하는 사람은 없죠.”

그는 과거처럼 조직에 헌신하는 기업 문화는 전혀 없다고 전했다. “일의 강도는 매우 높지만,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가정생활의 양립을 독려하는 분위기라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야근까지 없다면 좋겠지만, 그런 곳이 실제 있나요? 우리 사회에서 ‘일과 삶의 균형’은 일이 적은 게 아니라 ‘일할 땐 힘들게, 쉴 땐 확실히’가 아닌가 싶습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새벽별 보는 공무원 생활 칼퇴는 먼말
7급공무원 3년차 “일주일 두번만 제시간 퇴근”

“삐-, 삐-, 삐-.”

16일 오전 6시. 김공직(29·가명)씨는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3년차 중앙부처 7급 공무원인 그는 ‘공무원은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통념과 거리가 먼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공식적인 출근 시간은 오전 9시지만, 이 시간에 회의를 하는 경우도 많다. 회의나 업무 준비를 하려면 오전 8시에는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 도착해야 한다. “대변인실이나 비서실 등은 부서 특성 때문에 새벽 5~6시에 출근하기도 합니다. 우리 부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죠.”

회의와 업무 보고로 정신없는 오전을 보내면 어느덧 점심 시간이다. 정오부터 한 시간 동안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30분이라도 눈을 붙인다. 회의는 오후에도 이어진다. 회의 보고서 작성, 정책 관련 동향 파악, 다른 부처와 협업 조율, 민간업체의 상담 등이 끊이질 않는다. 짬짬이 민원전화를 받고 자잘한 업무까지 처리해야 한다. 김씨가 부서 막내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칼퇴근한다고 생각하시죠? 꿈도 못 꿉니다. 대기업에 비하면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적을지 몰라도, 임용 전 생각했던 ‘일과 생활의 균형’은 없더라고요.”

그는 ‘가족 사랑의 날’인 수·금요일을 제외하고 제시간에 퇴근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국정감사 시즌이 되거나 정책 이슈가 불거지면 퇴근 시간은 가늠할 수 없다. “정책 현안에 대해 여러 기관에 협조 요청을 하고, 남아 있는 업무를 처리하면 금세 밤 9시가 됩니다. 야근수당은 시간당 8000원인데, 이걸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요즘엔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누굴 위해 일했나 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업무 때문에 친구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그의 카카오톡에는 ‘공무원이 무슨 야근이냐’, ‘공무원이 얼마나 바쁘다고 비싼 척하냐’는 메시지가 남아 있기 일쑤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원 1인당 근로시간은 연 2200시간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전체 평균 근로시간은 연 2113시간으로 세계 3위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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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자는 상사의 권유 제일 싫어요
대기업 4년차 “일주일 두번 운동만이 내 생활”

“퇴근하면 잠자기 바빠요. 일·생활 균형 같은 거 잊은 지 오래예요.”

대기업 입사 4년차인 이대기(32·가명)씨의 평균 퇴근시간은 오후 10시다. 그나마 수·금요일이 ‘가족사랑의 날’로 지정되면서 일주일에 두 번은 오후 7시쯤 집으로 향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인사발령이 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출퇴근하게 돼 그나마 기상 시간이 6시 30분이지,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적어도 7시 30분에는 회사에 도착해야 하거든요.”

출근 시간은 오전 8시. 하지만 30분 먼저 출근해 업무 준비를 마쳐야 한다. 새벽부터 출근하는 몇몇 상관들의 눈치도 보인다. 씻는 둥 마는 둥 통근버스에 올라 사무실에 도착하면 전날 밤 클라이언트에게서 온 메일과 각종 업계 동향을 정리한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맡은 업무를 처리하면 어느새 정오.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뒤 안락한 소파가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후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소파에 앉아 10분이라도 눈을 붙여야 버틸 수 있어요. 밥 먹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자려고 하는 편이죠.”

오후에도 서류, 전화, 메일에 파묻혀 지내다 보면 금세 사무실 밖이 어두워진다. “저녁 먹고 하지”라는 상관의 말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라고 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라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이게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업계 특성상 월말이 되면 자정 넘어 퇴근하는 게 일상이죠. 매월 25일이 넘어가면 일찍 집에 가는 것은 포기합니다.”

고생한 대가로 돌아오는 건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식자리다. 이씨에게 일과 생활의 균형은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내 생활이라면 수·금요일에 운동하는 정도죠. 그나마 저희 회사는 퇴사율이 동종업계에 비해 낮은 편이에요. 그만 한 보상이 나오기 때문이죠. 어쨌든 미래를 생각하면 근무시간이 좀 길어도 높은 임금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씨가 받는 연봉은 성과급을 포함해 6700만원 정도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6-12-1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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