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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前대통령들도 찾던 피맛골… 미래유산의 보고 인사동까지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前대통령들도 찾던 피맛골… 미래유산의 보고 인사동까지

입력 2016-12-06 18:02
업데이트 2016-12-07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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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종각역 ~피맛골

서울신문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진행하는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문화자산을 찾아 나선 여정이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 시민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으로 미래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의미한다. 미래유산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시민제안이 언제나 가능하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를 통해 시민단체나 전문가들도 제안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한 커뮤니티 차원의 미래유산 발굴도 이뤄지고 있다. 미래유산 발굴과 신청은 시민 주도의 상향식 방식이 원칙이다.

제안된 예비후보들은 사실 검증, 자료수집을 위한 기초 현황조사를 한 후 소유주 동의에 따라 최종적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2호인 정독도서관 전경. 등록문화재는 개화기부터 6·25전쟁 전후 기간의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활용 가치가 커서 지정·관리하는 문화재다. 등록문화재 1호는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사옥, 3호는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이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2호인 정독도서관 전경. 등록문화재는 개화기부터 6·25전쟁 전후 기간의 근대문화유산 중 보존·활용 가치가 커서 지정·관리하는 문화재다. 등록문화재 1호는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사옥, 3호는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이다.
옛 경기고 자리에 들어선 정독도서관 정원 한가운데는 겸재정선의 그림비 ‘인왕제색도비’가 서 있다.
옛 경기고 자리에 들어선 정독도서관 정원 한가운데는 겸재정선의 그림비 ‘인왕제색도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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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종각역 사거리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본점 자리는 조선시대 의금부가 있던 터다. 의금부는 관원·양반의 범죄, 대역죄, 강상죄 등을 처벌하던 특별사법기관이다. 요즈음으로 치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특검과 같은 기관이었던 셈이다. 의금부가 있던 지역명은 공평동으로 ‘공정하게 재판을 처리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의금부 앞에는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신고받기 위한 신문고가 있었다. 길 건너 영풍문고 본점 자리는 전옥서가 있던 자리다. 전옥서는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미결수를 수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관원·양반 출신 범죄자는 의금부에서 담당했고 전옥서는 주로 상민 출신 범죄자를 수감했다. 최근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옥중화’를 통해 전옥서가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의금부 터에서 18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지난달 19일 오전 10시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박 해설사는 “‘종로 뒤안길 답사’ 등 그동안 종로를 횡축으로 누볐는데 이번 코스는 우정국로와 감고당길, 인사동길, 삼청로 등 남북으로 형성된 도로를 따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종축 탐방으로 준비했다”며 “이 지역은 서울미래유산의 보물창고”라고 운을 뗐다. 이어 서울미래유산이란 무엇이고, 답사를 왜 진행하는지 그리고 답사 진행에 따른 안전수칙을 설명한 뒤 이동을 시작했다. 의금부 터에서 우정국로를 따라 북쪽으로 70여m쯤 가다가 처음 만나는 골목을 들여다보니 열차집이 자리잡고 있다.

청진옥·미진·열차집·청일옥…
3대 가업 잇는 노포식당 즐비


열차집은 3대째 이어오는 빈대떡 전문점이다. 1954년 지금의 교보빌딩 인근 세종로 뒷길 한옥가 골목길에서 창업주 안덕인씨가 문을 열었다. 박 해설사는 “당시 추녀 밑에 기차간처럼 길게 놓인 의자를 보고 사람들이 ‘기차집’이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됐다”며 “1960년 피맛골로 이전해 ‘열차집’이라는 간판을 단 게 상호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현 운영주인 우제인씨 부부는 1976년 열차집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다 안씨로부터 장사 노하우를 전수받아 가게를 인수했다. 2009년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비서관을 시켜 이 집 빈대떡을 가끔 사갔다고 한다.

이번 답사코스에는 열차집을 비롯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식당이 꽤 많다. 1937년 개업한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대표 최준용), 1954년 문을 연 메밀전문식당 미진(대표 이수련), 1945년 개업한 녹두빈대떡 전문점 청일집(대표 이승진) 등 노포가 즐비하다. 이들 노포는 모두 3대째 대물림해서 운영되고 있다. 청진옥은 백범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 박 해설사는 “과거 해장국집에서는 밥을 팔지 않고 손님이 찬밥을 가져와 토렴해 먹었다”며 “이유는 밥이 식으면 밥알이 갈라지는데 그 사이로 국물이 스미면서 풍미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뜻한 밥을 국에 넣으면 국물을 빨아들여 불어버리기 때문에 맛이 제대로 안 나 일부러 찬밥을 쓴다는 것이다. 박 해설사가 전문요리사처럼 설명하자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열차집 대각선 방향에는 동헌필방과 NH농협은행 종로지점이 이웃해 있는데 서울미래유산에도 나란히 선정됐다. 동헌필방은 1934년 창업한 남계양행의 사옥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남계양행 창업주 윤치창은 개화파 무신 윤웅렬의 서자이자 구한말 개화파 윤치호의 이복동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개화기 신문물을 일찍 수용한 인물이다. 이 건물 출입구의 상부 박공은 색다른 조적조 쌓기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NH농협은행 종로지점 건물은 1926년 지어진 서울시 근대건축물이다. 1926년 창간한 중외일보 판권과 신문 호수를 이어받아 1931년 창간한 중앙일보(조선중앙일보 전신)가 1933년 똬리를 튼 곳이다. 당시 몽양 여운형(1886∼1947)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호를 조선중앙일보로 바꾸고 사옥도 옮겼다. 1936년 8월 10일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인해 1937년 폐간당했다.

동헌필방과 NH농협은행 종로지점은 이웃해 있으면서 나란히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각각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동헌필방과 NH농협은행 종로지점은 이웃해 있으면서 나란히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각각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두가헌은 한옥 레스토랑과 러시아식 양식 건축물이 짝을 이루고 있다. 한옥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빈 엄씨가 살았던 곳이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두가헌은 한옥 레스토랑과 러시아식 양식 건축물이 짝을 이루고 있다. 한옥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빈 엄씨가 살았던 곳이다.


조계사 옆 우정총국 회화나무 아래서 18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단체사진을 남겼다. 회화나무는 갑신정변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 온 역사성 때문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조계사 옆 우정총국 회화나무 아래서 18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단체사진을 남겼다. 회화나무는 갑신정변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 온 역사성 때문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고서매매서점 ‘通文館’(통문관). 글씨는 검여(劍如) 유희강이 썼다. 1934년 문을 연 통문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적 매매 서점이다.
고서매매서점 ‘通文館’(통문관). 글씨는 검여(劍如) 유희강이 썼다. 1934년 문을 연 통문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적 매매 서점이다.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귀천.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운영하던 찻집으로 안국동 큰길 가에 있다가 목씨가 사망한 후 폐업하고 지금은 근처에서 목씨 조카가 2호점을 열어 명맥을 잇고 있다.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귀천.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가 운영하던 찻집으로 안국동 큰길 가에 있다가 목씨가 사망한 후 폐업하고 지금은 근처에서 목씨 조카가 2호점을 열어 명맥을 잇고 있다.


종로구 화동에 있는 서울시 시도유형문화재 제9호 종친부.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강제로 뜯겨져 이전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조선 왕실의 봉작, 관혼상제를 관리하던 기관이다.
종로구 화동에 있는 서울시 시도유형문화재 제9호 종친부.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강제로 뜯겨져 이전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조선 왕실의 봉작, 관혼상제를 관리하던 기관이다.


1937년 개업한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 백범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 피맛골이 개발되면서 르메이에르 빌딩 뒤편 1층에 자리를 잡았으나 눈에 띄질 않자 80여m 떨어진 길가에 별관을 열었다.
1937년 개업한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 백범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 피맛골이 개발되면서 르메이에르 빌딩 뒤편 1층에 자리를 잡았으나 눈에 띄질 않자 80여m 떨어진 길가에 별관을 열었다.


손기정 일장기 말소로 폐간된 신문사
갑신정변 실패 지켜본 회화나무도 미래유산

조계사 정문 우측에는 우정총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종 21년인 1884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행정관서로서 조선시대 통신수단인 역참제의 대체수단이었다. 병조참판 홍영식이 초대 총판을 지냈다. 우정총국은 낙성식을 틈타 개화당의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실패하자 개국 17일 만에 문을 닫았다. 초대 총판 홍영식은 김옥균과 달리 일본으로 망명하지 않고 29세에 대역죄로 처형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런 역사를 우정총국 앞마당 회화나무가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박 해설사는 “갑신정변의 현장이었던 우정총국 일대를 지켜온 나무로서 보전 가치가 높아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답사팀은 안국동 사거리를 통해 인사동길로 접어들었다. 100여m를 들어서니 한자로 ‘通文館’(통문관)이라고 돌에 각자 간판을 단 서점이 있다. 글씨는 서예가인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이 썼다. 1934년 문을 연 통문관은 고서 매매와 출판업을 겸했던 서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적 매매서점이다. 80년 넘게 같은 지역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면서 관훈동 일대의 시대상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곳이다. 통문관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귀천이 나온다. 귀천은 천상병(1930~1993) 시인의 부인 목순옥(1935~2010)씨가 운영하던 찻집이다. 인사동 큰길 가에 1985년 개업했던 원래 찻집은 목씨가 사망한 뒤 폐업하고, 지금은 남도 제철음식점 ‘여자만’ 앞에 목씨 조카가 2호점을 열어 명맥을 잇고 있다. 귀천과 이곳에 인접한 인사동 14길 24-1 일대 한옥밀집지역 모두가 서울미래유산이다. 한옥 골목을 빠져나와 서울미래유산인 서울시노인복지센터(구 통계청)를 지나 풍문여고 옆 길인 감고당길(율곡로3길)로 들어섰다. 이 지역은 매주 토요일에 계속되고 있는 민중총궐기 때면 통행이 통제되는 곳이다. 덕성여고 자리에 있던 숙종 계비 인현왕후의 친정 감고당(感古堂)에서 길 이름이 유래했다. 감고당은 현재는 경기 여주시로 옮겨졌다. 직장이 광화문인 안진남(42)씨는 “오늘 답사하는 지역의 과거 지명과 역사를 두루 알고 싶어 답사를 신청했고,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며 “프로그램을 너무 늦게 알게 돼 후회스럽고 내년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인들 아지트·귀천·고서점 통문관
인사동길은 미래유산 밀집지역

김봉완 공인중개사가 1968년 개업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미래유산 신영부동산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장남 김선재(1990년 사망)씨를 기리고자 만든 아트선재센터를 지나 정독도서관에 다다랐다. 1900년부터 1976년까지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정독도서관은 등록문화재 제2호다. 본관 앞 정원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겸재가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는 종친부(조선 왕가의 종친관계 일을 맡았던 관청)에 있다. 종로구 화동 종친부 앞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구 국군보안사령부)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탈바꿈했다. 기무사령부 이전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이 자리했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왕실 가족들의 봉작(봉토와 작위 하사), 관혼상제를 관리하던 관청이다. 박 해설사는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옹립하고 외척으로부터 왕권을 보호하던 정책이 종친부에서 나왔다는 일설도 있다”며 “군인들이 테니스를 치기 위해 종친부를 통째로 옮길 만큼 만만하게 볼 사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무사가 힘을 쓰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1년 테니스장을 짓도록 종친부 건물을 뜯어서 정독도서관 구내로 옮겨버린 사건을 지적한 것이다.

감고당길에 서린 인현왕후의 추억
흥선대원군 권력의 핵심 종친부의 설움

이 근처에는 금호미술관, 갤러리 현대 등 갤러리가 많은데 두가헌도 그중 한 곳이다. 1950년대에 지어져 1965년 사용승인이 났다. 두가헌은 갤러리 현대 소유의 4개 갤러리 중 하나로, 한옥 레스토랑과 러시아식 양식 건축물이 짝을 이룬다. 한옥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빈 엄씨가 살았던 곳이다. 마당 한가운데 수령이 제법 됨 직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씩씩하게 서 있다. 박 해설사는 “한옥과 서양식 건물의 조화로 장소가 예뻐서 웨딩 촬영하러 많이 오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옛 수송초등학교에 자리잡은 종로구청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77년 수송초교가 폐교된 뒤 종로구청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30년대 준공 당시 외관을 비교적 양호하게 간직하는 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 학교건축 양식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답사는 피맛골에 세워진 르메이에르 빌딩에서 마쳤다. 이 빌딩에만 서울미래유산 음식점이 세 곳 있다. 부모님과 함께 나온 서울교대 초등교육과 3학년 권상리(21·여)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나왔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적을 많이 봤다”며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과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2016-12-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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