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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그대,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란

삶이 극적(劇的)일 수는 있어도, 삶 자체가 극일 수는 없다. 뮤지컬영화에서는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선율이 흘러나와 주인공이 춤추고 노래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라는 인생의 주인공이 행복에 겨워하든 비탄에 잠기든, 세상은 그에 알맞은 배경 음악을 틀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뮤지컬영화를 보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도회장에 가지 않고도 춤출 수 있고, 노래방에 가지 않고도 노래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춤추고 노래하는 삶이 일상이라면 굳이 뮤지컬영화를 볼 필요는 없으리라. 물론 다들 아는 대로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몽상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환상의 세계와 꿈의 나라―뮤지컬영화 ‘라라랜드’는 실재에 묶인 우리에게 역설적인 의미를 준다.

‘라라랜드’
이런 점에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말은 기억해 둘 만하다. “뮤지컬은 꿈과 현실 사이의 균형 잡기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위플래쉬’로 수많은 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그가 후속작으로 뮤지컬영화를 찍은 이유가 이 문장에 담겨 있다. 꿈과 현실,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무게 중심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운 만큼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제목 ‘라라랜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환상의 세계와 꿈의 나라”, 다른 하나는 “로스앤젤레스 및 남부 캘리포니아”. 과연 이 작품은 로스앤젤레스를 배경 삼아, 미아(에마 스톤)와 서배스천(라이언 고슬링)이 이루려는 꿈의 과정을 보여 준다.

미아는 배우 지망생이고 서배스천은 무명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이렇게 보면 이들의 소망은 명확한 듯하다. 그녀는 배우가 되고 그는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바람은 성취하기 어렵다. 성공의 기회는 적은데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다. 천사의 도시라고 불리는 로스앤젤레스이지만, 이곳에서 모두가 천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도 그렇다. 목표에 도달했다는 환희 다음에는, 자신이 갈망하던 꿈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했냐는 허무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현실로 바뀐 꿈은 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꿈과 현실 가운데, 그 어디쯤에 놓일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아와 서배스천이 부르는 노래에서도 드러난다. “꿈을 꾸는 그댈 위하여 / 비록 바보 같다 하여도 / 상처 입은 가슴을 위하여 / 우리의 시행착오를 위하여”(미아) “별들의 도시여 / 나만을 위해 빛나는 건가요 / 별들의 도시여 / 너무 눈부셔 쳐다볼 수 없네요 / 누가 알까요 / 이것이 황홀한 그 무언가의 시작일지 / 아니면 또 한 번 / 이루지 못할 한낱 꿈일지”(서배스천) 그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여기는 ‘라라랜드’,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극 자체로서의 삶. 7일 개봉. 12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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