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말안장에 앉은 주몽?… 역사 왜곡, 안방 TV서 시작”

“영국식 말안장에 앉은 주몽?… 역사 왜곡, 안방 TV서 시작”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16-07-21 17:34
수정 2016-07-2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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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 인문학자 최형국 박사

신간 ‘조선의 무인은…’서 일침
주인공은 투구 없이 전투하고 임란 뒤 무기 당파, 조선초 등장
“시청률서 벗어나 고증 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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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 박사가 20일 수원 화성행궁에서 실제 무장한 조선 장군의 전투 복장을 재현하고 있다. 투구의 ‘드림’을 좌우로 여며 안면부를 보호하고, ‘띠돈’이라고 불리는 360도 회전형 고리를 달아 칼집을 몸에 찬 채 칼을 휘두르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최형국 박사가 20일 수원 화성행궁에서 실제 무장한 조선 장군의 전투 복장을 재현하고 있다. 투구의 ‘드림’을 좌우로 여며 안면부를 보호하고, ‘띠돈’이라고 불리는 360도 회전형 고리를 달아 칼집을 몸에 찬 채 칼을 휘두르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조선 무예사를 연구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게 영화나 사극 속의 고증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오락물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사극은 낯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상임연출자이자 ‘무예 인문학자’로 조선 무예를 복원해 온 최형국(41) 박사의 지적이다. 최 박사는 20일 수원 화성행궁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현재 사극의 무예사·군사사 고증대로라면 임진왜란 때 거북선 머리에 화염방사기를 달거나 판옥선 위에 기관총을 장착해도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을 정도”라며 “드라마 ‘주몽’이나 ‘선덕여왕’에서 주인공들이 1900년에 도입된 영국식 말안장에 앉아있을 정도니 사극 소품들이 2000년 세월을 넘나드는 게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라고 말했다.

최 박사가 최근 펴낸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인물과사상사)는 무지와 오해, 시청률 지상주의로 얼룩진 사극 속 전투와 무예의 민낯을 보여 준다. 조선시대 사극에 주로 등장하는 무기는 삼지창처럼 생긴 당파다. 조선 초기부터 후기까지 거의 모든 사극 속에서 포졸들이 들고 있는 대표적 무기다. 당파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에서 들여온 최신 무기이지만 태조 이성계가 주인공인 드라마에도 등장한다. 당파는 3개의 창날 중 좌우 창날이 바깥 쪽으로 휘어져 있어 찌를 수 없는 무기다. 병졸이 적이 긴 창으로 찔러 올 때 적의 무기를 찍어 누르면 옆에 있던 병졸이 적을 제압하는 특수 병과의 무기였다. 조선시대 병법서에는 ‘용맹과 위엄이 뛰어나고 담력이 큰 사람을 따로 선발해 당파를 쓰게 한다’고 명시돼 있을 정도다.

비교적 고증이 잘 됐다고 평가받은 영화 ‘명량’에서는 군사들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지만 얼굴을 향한 공격을 막아 주는 ‘투구 드림’을 다 풀어 헤치거나 주인공은 아예 투구를 쓰지 않고 전투를 한다. 최 박사는 이를 방탄복 조끼를 열고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전투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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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정도전’의 한 장면. 태조 이성계가 영국식 말안장에 앉아 삼국시대에나 쓰인 직선형 환두대도를 사용하고, 전투 중인데도 투구도 쓰지 않고 있다.
TV 드라마 ‘정도전’의 한 장면. 태조 이성계가 영국식 말안장에 앉아 삼국시대에나 쓰인 직선형 환두대도를 사용하고, 전투 중인데도 투구도 쓰지 않고 있다.
사극에 나오는 전투 장면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조선 시대 군사는 오(伍)와 열(列)을 맞춰 진법과 대형에 따라 싸웠다. 정조가 1795년 화성에 행차하던 모습을 그린 반차도를 봐도 오와 열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사극에 나오는 전투 장면은 하나같이 ‘개싸움’ 같은 난장판이다. 지휘관의 공격 명령과 함께 여기저기서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달려든다. 오와 열도 없다. 조선군을 마치 오합지졸로 보이게 연출하는 꼴이다.

야간 전투 장면에서 으레 나타나는 불화살을 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활은 초당 65m를 날기 때문에 활활 타오를 수 없다. 조선 시대에는 화약 기술이 보급돼 얇은 심지에 불을 붙인 화살이 적진에 박히고 작약 통 속의 화약이 터지면서 적 진지에 불을 지르는 방식의 전투였다.

최 박사는 “사극이 팩트인 역사 다큐멘터리까지 영향을 미쳐 똑같은 오류가 반복된다”면서 “우리 안방의 TV에서부터 역사 왜곡이 생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극이 자꾸 선정적으로 변해 가는 이유는 시청률 때문입니다. 고증 노력도 중요하지만 비판적인 시청자가 많아져야 사극의 역사 왜곡이 사라질 것입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2016-07-22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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