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칸 영화제에서 만난 안 르 에나프 트라블링 축제 예술감독은 “고유의 스타일에 글로벌한 감성인 휴머니티가 담겨 있어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브르타뉴의 중심 도시 렌에서 열리는 트라블링은 프랑스 북서부 지역 최대 영화 축제다. 해마다 주제 도시를 정해 열리는데 올해 2월 축제의 테마는 ‘서울의 초상’이었다. 고전에서부터 신작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모습을 담은 크고 작은 영화 50여편을 소개했다.
에나프 예술감독은 “이전부터 서울을 다뤄 보고 싶었는데 마침 한·불 상호교류의 해 기념사업을 통해 소원을 풀게 됐다”고 설명했다. 축제에는 3만 7000여명이 다녀갔다. 한국 영화가 낯선 중장년층 관객이 다수였는데 축제 포스터를 장식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비롯해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 상영 전 한국 영화의 폭력성 이면에 숨겨진 의미 등을 설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면서 “한국 영화는 잔혹하고 폭력적이라며 애써 외면하려는 관객들에게 이번 축제가 한국 영화의 코드를 이해하고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에나프 예술감독은 한국 영화의 힘은 여러 장르를 융합해 내는 창의성, 또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안에 사회상을 자연스럽게 녹여 내는 고유성에서 나온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블록버스터나 장르 영화에서도 사회, 경제 상황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는 것이다. 미장센 또한 유럽에선 볼 수 없는 방식이라고 치켜세웠다.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조금 실망스러웠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일부 캐릭터가 깊게 묘사되지 못하고 엔딩 부분이 불필요하게 늘어졌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 중 ‘오아시스’를 최고로 꼽은 그는 이창동 감독이 작품을 많이 만들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이 감독님의 작품은 섬세하고 인간적이어서 굉장히 좋아해요. 감독님에게 문이 활짝 열려 있어요. 오겠다고 하면 두말없이 특별전을 할 거예요.”
칸(프랑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