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완생’ 꿈꾸는 132인 미생들

‘1%의 완생’ 꿈꾸는 132인 미생들

이성원 기자
입력 2016-03-14 23:04
수정 2016-03-1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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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한국기원 바둑연구생

132명 중 한해 단 2명 프로행
입단해도 생계 보장 안 돼 부업…데뷔 못하면 학원·편의점 알바


“바둑의 매력은 각각의 수를 선택하면서 내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소통한다는 데 있어요. 하지만 친한 친구와 승부를 겨뤄야 하고 그중 한 명은 낙오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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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바둑도장 수강생들이 14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충암도장에서 동료들과 대국을 펼치거나 기보를 보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충암바둑도장 수강생들이 14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충암도장에서 동료들과 대국을 펼치거나 기보를 보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14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충암바둑도장에서 만난 박지영(26·여)씨는 여전히 프로기사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박씨는 중1 때인 2003년 한국기원의 바둑 연구생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2008년 고3이 될 때까지 프로에 입단하지 못했다. 만 18세까지 프로기사가 되지 못하면 연구생 자격이 박탈된다.

박씨는 아마 6단으로 남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2010년 명지대 바둑학과에 입학했고 각종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박씨는 프로기사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한국기원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일반 입단대회’를 통해 1년에 5명씩 프로기사를 선발한다.

●바둑인구 500만~600만으로 줄어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프로 입단을 하지 못해 바둑계를 떠났지만, 박씨는 여전히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드라마에 이어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으로 바둑이 뜨고 있지만, 프로기사의 길은 여전히 멀고 힘들다. 이 9단 같은 최정상의 프로기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바둑인들의 수입은 시원찮다. 한때 1000만명이 넘었던 바둑 인구는 서서히 줄어 최근에는 500만~600만명에 그친다는 게 바둑계의 추산이다.

프로기사가 되려면 한국기원을 거쳐야 한다. 한국기원 연구생 132명 중 1년에 2명만이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다. 일반 입단대회 등의 경로도 있지만 모두 합해 봐야 한 해에 탄생하는 프로기사는 15명 정도다. 희망자 중 1%만이 프로의 길에 들어선다. 김대용(31) 충암도장 수석사범은 “연구생들은 한국기원 리그를 통해 자신의 순위를 명확하게 알고 있으며 이 순위를 한 계단 끌어올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며 “10년 가까이 바둑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라 프로로 전향하지 못하면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1 때부터 3년간 바둑 연구생을 지냈던 김대권(26·개인 바둑강사)씨는 “프로기사가 못 되면 대부분 월 120만~150만원을 받으며 바둑학원에서 지도를 하거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게 된다”며 “일반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도 바둑만 공부하다가 학과 공부로 전향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스스로 낙오자라 생각 않길”

프로기사가 돼도 가시밭길이다. 현재 등록된 320명의 프로기사 중 연간 1억원 넘게 상금을 받는 정상급 기사는 20명 남짓이다. 30~40위권이 연 5000만원 정도를 번다. 나머지는 고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바둑학원에서 지도사범직을 맡거나 일반 회사에 다니면서 바둑을 병행한다. 한 프로기사는 “프로기사 수가 300명을 넘어서면서 요즘에는 바둑도장에서 사범 자리 하나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김 수석사범은 “매서운 현실을 감안할 때 연구생들이 바둑에 사활을 걸되 너무 바둑에만 파묻히지 않았으면 한다”며 “프로에 입단하지 못해도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니 스스로 낙오자라고 낙인을 찍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16-03-1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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