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한·중 FTA에서 농산물은 1611개 품목 가운데 581개(36.1%)가 초민감 품목으로 지정되고 이 가운데 541개(93%)가 양허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한·중 FTA는 한국이 체결한 다른 FTA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그럼에도 중국 농업이 한국 농업에 주는 장기적 불안감은 크다.
낮은 생산비와 함께 지리적 근접성, 제도의 불투명성, 다양한 기후대 등이 주요 원인이다. 한국과 유사 기후대인 동부 연안 지역에서는 직접 경쟁 품목을, 온난 기후대인 서남부 지역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대체 품목의 공급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국회는 많은 비판을 무릅쓰고 다소 어색해 보이는 1조원 규모의 가칭 ‘농어업 상생협력기금’까지 만들면서 한·중 FTA를 비준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상무부 후원의 한 행사를 다녀오면서 한국 농업이 마냥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달 말 중국 상무부가 후원하고 중국농산물도매시장협회가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에서 개최한 ‘국제농산물무역전람회’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중국 농산물도매시장은 한국과 달리 상무부 관리 조직이면서 연간 거래량이 전체 농산물 소비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농산물 유통에서 중심역할을 한다. 유럽, 동남아시아, 중남미를 아우르는 20개 주요 국가에서 수출상인과 베이징 주재 대사관 관계자를 보내왔다.
흥미로운 것은 행사의 성격이었다. 중국 농산물의 수출을 위한 것이 아니고 반대로 주요 국가들의 대중 수출 시 중국 농산물 도매시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행사였다. 동시에 중국 도매시장 구매자와 주요국 수출업자를 연결해 주는 것도 행사의 일부였다. 대회를 주관하는 도매시장협회장은 중국 농산물도매시장을 농산물 판매 창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중국은 지금 13억명 인구 부양을 위해 농식품의 해외 수출보다는 안정적인 수입망 구축에 노력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도 지리적 이점을 가진 한국 농업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는 지금까지 개최 도시를 바꾸어 가면서 열었는데 이번이 벌써 여덟 번째였다.
하지만 한국 수출업자와 대사관 관계자는 보이질 않았다. FTA 발효와 함께 중국 농산물의 한국 상륙을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가능한 기회는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행사에서 만난 몇몇 중국 농산물도매시장 관계자는 한국 농식품의 안전성과 고품질 이미지를 언급하며 중국에서의 가능성을 크게 평가했다. 한국 정부와 업계의 긴밀한 협력과 외교적 노력으로 최근 우유와 포도를 중국으로 수출했다.
거기에 얼마 전 한국과 중국 정부가 수출 위생 및 검역·검사 조건에 최종합의를 이룬 쌀, 삼계탕, 김치 등도 곧 수출 길이 열릴 것 같다. 이 가운데 포도는 신선 농산물로는 처음으로 검역협상이 타결되어 실제 수출까지 이루어져 그 의미가 크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 힘입어 파프리카, 토마토, 참외, 딸기, 단감, 감귤 등 신선농산물도 검역협상을 요청하였고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협상이 진행 중이다. 중국 농산물도매시장이 가장 많이 취급하는 품목이 신선과일·채소류임을 고려할 때 앞으로 이들 품목의 수출을 위해 한국이 어디서 기회를 잡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가 좀 분명해지는 것 같다. 정부를 비롯한 관계주체가 함께 노력한다면 한·중 FTA는 한국 농업에 ‘위기는 기회’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줄 가능성이 크다.
2015-12-14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