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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생명끈을 지켜라” 한밤의 ‘좀비-런’ 참가기

[백문이불여일행] “생명끈을 지켜라” 한밤의 ‘좀비-런’ 참가기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1-02 16:02
업데이트 2015-12-1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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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런엔 실감나는 좀비들이 많다. 연기력도 출중하다.
좀비런엔 실감나는 좀비들이 많다. 연기력도 출중하다.
핼러윈(Halloween)과 주말이 만난 10월 31일. 해진 저녁, 대공원역을 향하는 지하철 안에는 무시무시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분장인 걸 알면서도 징그럽게 느껴지는 실감나는 상처분장을 하고, 피를 덕지덕지 묻혀 유유히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 원래의 얼굴이 가늠 안 되는 진한 분장을 한 얼굴이 많이 보이는 걸 보니 제대로 찾아왔다 싶다.

엄청난 한파에 분장을 생략하고, 두툼히 챙겨 입었지만 역에서 내리자마자 움츠러드는 몸. 입구까지 가는 코끼리열차는 창문도 없이 쌩쌩 달린다. 춥다, 추워!

한밤의 좀비런. 공포 앞에서 추위도 잠시 잊혀진다.
한밤의 좀비런. 공포 앞에서 추위도 잠시 잊혀진다.
좀비런 좀비들이 뽑은 잡기 쉬운 러너 유형.
좀비런 좀비들이 뽑은 잡기 쉬운 러너 유형.
러너 참가자로 부스에서 팔찌를 받고 이름표와 생명끈 3개, 초콜릿이 담긴 가방을 받았다. 출발시간은 밤 10시.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1000명의 러너들이 출발한다. 놀이동산이 폐장하니 그야말로 어둠이지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자 축제분위기가 제법 난다.

허리끈을 매고 생명끈 3개를 걸었다. 출발선에 서서 ‘연회장’으로 입장했다. 안내받은 규칙은 단순하다. 서울랜드 안 3km 구간을 좀비를 피해 달리는 것. 중간에 생명끈을 모두 뺏기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미션이다. 연구소, 서든 어택 등 여러 개의 구간이 러너들을 기다리고 있다. 안전을 위해 같은 타임 안에서도 20명씩 나뉘어서 출발신호를 받았다. 하나, 둘, 셋!

잰 걸음으로 어둠을 따라 가는데 갑자기 좀비가 등장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공포 앞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도, 근육통으로 어정쩡하던 걸음걸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진다. 함께 간 친구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놓고 각자 살길을 찾아 뛰었다. “으악!!!” 쉬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쫓아오는 좀비, 함께 소스라치며 뛰는 사람들, 카오스가 따로 없다. 함께 뛰던 친구는 놀란 나머지 제대로 넘어졌다. 하지만 친구를 구하러 갈 수 없다. 눈빛으로 ‘일단 뛰어!’를 외치며 피신했다.

학창시절 이후로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린 적이 없었다. 갑자기 뛰었을 때 생기는 옆구리 통증을 손으로 부여잡고 가쁜 숨을 내뱉었다. 다음 구간으로 가는 길, 숨은 차고 무서워 죽겠는데 웃음이 계속 난다. 즐겁다. 오랜만에 몸을 쓰며 느끼는 즐거움, 어른이 되고 처음 하는 이 무서운 술래잡기에 사람들은 아이였던 때로 돌아가 오들오들 떨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비명, 불쑥불쑥 나타나는 좀비들. 끝이 날 듯 나지 않는 3km다. 종착점에 도착하니 안도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격렬한 뜀박질에 흘린 생명끈을 제외하고 2개의 생명끈을 지켜냈다. 넘어진 친구는 좀비와의 사투 끝에 3개 모두를 가지고 왔다. 숨이 차 더 이상 못 뛰겠다고? 걱정할 것 없다. 인간의 생존본능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죽을 둥 살 둥 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거다.

‘좀비런’은 좀비와 생존 게임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색적인 달리기 행사이다. 2013년 연세대 축제에서 경영학과 재학생 원준호씨의 기획으로 시작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원씨는 이후 ‘커무브’라는 청년 벤처기업을 세워 서울랜드, 경남 합천 고스트파크, 인천 문학경기장, 부산 아시아드경기장에서 좀비런을 개최했다.

TV 속 ‘런닝맨’과 좀비물을 현실세계로 옮겨와 2030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많다. 외국인 참가도 늘고 있으며, 스포츠와 게임을 결합한 색다른 놀이문화로 호평을 얻고 있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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