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아들은 어떻게 평화의 메신저가 되었나

살인자의 아들은 어떻게 평화의 메신저가 되었나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5-10-23 17:52
수정 2015-10-23 19:5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테러리스트의 아들/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노승영 옮김/문학동네/136쪽/1만 2000원

저자 잭 이브라힘은 198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엘사이드 노사이르. 미국 땅에서 살인을 저지른 최초의 무슬림 지하드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저자의 성이 아버지와 다른 건 물론 ‘노사이르’가 의미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다. ‘저명한’ 아버지 탓에 저자는 늘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란 낙인 속에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스무 번 넘게 이사했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다. 극심한 가난에도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증오 범죄에 동조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증오가 아닌 관용을, 폭력이 아닌 평화를 선택했다. 테러에 반대하는 강연을 열고 평화와 비폭력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의 테드(TED) 강연도 이런 활동의 하나였다. 새 책 ‘테러리스트의 아들’은 당시 테드 강연이 모태가 돼 펴낸 책이다. 저자가 증오를 극복하고 평화의 메신저가 되기까지 지나온 길을 담담하게 펼쳐내고 있다.

이미지 확대

저자가 일곱 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였던 메이르 카하네를 권총으로 살해했다. 그 자신도 청원경찰과의 총격전에서 목에 부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저자는 아버지가 다시는 남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테러 행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3년 초, 교도소 감방에서 지인들과 함께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목표로 한 첫 폭탄 테러 계획을 세웠다. 이 차량폭탄 테러로 1000여명이 부상을 입었고 임신 7개월의 여성을 비롯해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력은 늘 저자 곁에 머물렀다. 학교에서조차 피부색이 다르다고, 땅딸막하다고, 말이 없다고 얻어맞았다. 어머니도 길거리에서 조롱당했다.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유령이나 닌자로 불렸다. 어린 나이에 이런 일들을 겪다 보면 필경 비뚤어진 방향으로 반응했을 법하다. 한데 저자는 달랐다. 그는 “광신의 불 속에서 자랐으되 비폭력을 받아들인 젊은이의 초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날 때부터 증오를 훈련받은 사람도, 마음이 비뚤어지고 무기처럼 된 사람도 스스로 관용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현재 일리노이주 연방교도소에 무기수로 수감돼 있다. 저자가 아버지 면회를 가지 않은 지는 벌써 20년째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5-10-24 18면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