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 채팅 앱으로 접근해 “너 예쁘다” 특정 신체 부위 사진 요구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 A씨는 어느 날 아이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는 기절초풍을 했다. 딸이 자신의 성기 사진을 직접 찍어 모르는 남자에게 보낸 내역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난제1: 범인에게 어떤 죄목을 적용할 것인가?
아이의 사진이 인터넷 어딘가에 유포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이 사건을 맡은 김모 변호사는 난감했다. 어린 나이의 피해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진을 보냈고, 성인 남성이 이를 유도한 것을 감안하면 엄벌이 필요하지만, 당장 피의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최근 맡았던 것 중에서 가장 고민되는 사건”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법리만 따져서는 형법상 강요죄가 성립하지 어렵다고 봤다. 피해자인 초등학생이 폭행이나 협박 등 강압적인 요구 없이 사진을 보낸 것이라면 강요죄를 적용하지 않는 게 법원의 일반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혐의에 해당되는지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이에 더해 미성년자가 가해자의 강요 없이 음란 사진을 보냈더라도 미성년자에게 성적 학대를 가한 것이라는 최근 법원의 판례에 기대를 걸었다.
이 대목에서 최근 판례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올 7월 군인 B씨가 인터넷 게임을 하다 알게 된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낸 바 있다. B씨는 2012년 피해자와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하다 ‘화장실에 가서 배 밑에 있는 부분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2심까지는 피해자가 B씨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 학대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가해자의 요구에 대해 피해 아동이 명시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성적 학대 행위’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미성년자가 타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해 요구한 것은 피해자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가혹행위”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스마트폰 채팅으로 알게 된 미성년자에게 겁을 줘 음란 행위를 시킨 혐의(강요죄)로 기소된 30대 남성 C씨 역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C씨는 피해자가 신체의 특정부위를 찍은 사진을 전송하도록 하고, 어머니의 사진까지 보내도록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난제2: 명의도용한 범인은 좀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가해자의 혐의를 어떻게 입증할까에 대한 A씨와 김 변호사의 고민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았다. 가해자 자체를 붙잡지 못한 탓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A씨 사건에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가해자가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한 아이디를 사용했고, 채팅창에서 나가면서 추적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김 변호사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김 변호사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범행의 경우 가해자를 붙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5-09-15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