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45)을 만났다. 9일 개봉한 영화 ‘손님’에서 사소한 약속조차 소중히 여기고 그 믿음이 배신당하자 처절히 분노하는 인물로 분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찻집에서 만난 뭔가 거친 이미지의 이 배우는 최근 3년 남짓 동안 자기 연기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 숱한 연기 변신을 하더니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 ‘흥행 배우’로 입지를 굳히는 중이다. ‘최종병기 활’(2011년, 741만명)의 만주족 장수를 시작으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 1232만명)의 폭군과 성군 사이의 신하, ‘7번방의 선물’(2013년, 1281만명) 속 딸바보 아빠, ‘명량’(2014년, 1761만명)의 집요한 일본군 장수 등 그의 존재감은 매년 흥행 영화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는 “물론 많은 분이 봐 줬다는 점에서 감사할 일이지만 흥행의 수치로 기억되기보다 관객과 배우 모두 마음의 치유가 되고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기를 더욱 바란다”고 몸을 낮췄다. 심드렁해 보이지만 쉽게 몸을 들썩이기보다 가능한 한 말을 아끼는 진중한 모습이다.
다양한 역할이 많이 들어오겠다는 물음에 류승룡은 “한때는 악역, 코미디 역할만 들어온 적도 있었다”며 “제작자나 감독들 입장에서는 기존에 검증된 캐릭터에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는 “새로운 캐릭터건 기존 캐릭터건 역할을 맡을 때마다 끝까지 파 보자는 마음으로 일종의 ‘무한도전’을 한다”며 “구태의연하거나 한계를 정해 놓고 연기하지 않고 밑바닥을 파헤치자는 마음으로 접근한다”고 말했다. 류승룡은 이준익 감독이 그에게 건넨 조언을 늘 되새긴다. “땅을 파면 팔수록 맑은 물이 나오듯 손톱이 빠지도록 샘의 바닥을 파는 것은 배우의 몫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의 류승룡은 그냥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누가 알아듣건 말건 사실상 고어가 돼 버린 만주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연기하고(‘최종병기 활’), 흉내만 내도 충분할 법한 피리 연습을 100일 동안 꾸준히 해낸 모습(‘손님’) 등은 배우로서 그의 자존심이다.
최소한 대중의 인식 속에서 그는 ‘늦깎이 배우’다. 1986년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서 처음 연기를 접하며 질풍노도의 삶이 구원받고 치유받았음을 인식했다. 이후 과수원, 도로포장 등 막노동을 하는 무명 배우의 삶 속에서도 한 번도 좌고우면하지 않은 채 계속 연기를 삶의 축으로 붙잡고 살았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것은 불과 최근 몇 년 사이 일이다. 2011년 이전의 배우 류승룡은 그저 아는 사람들만 아는 배우였다. 1998년부터 5년 동안 뮤지컬 ‘난타’를 했고 연극 ‘서툰 사람들’, ‘택시 드리벌’, ‘웰컴투동막골’ 등 무대에서 무한 내공을 쌓던 시간들은 제대로 노출되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최근 그에게는 ‘뜨니까 변했다’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TV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과거 뮤지컬 ‘난타’를 함께했던 동료들이 그에 대해 던진 우스갯소리가 일파만파로 번진 것이다. 녹화 당일 당사자들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모두 풀었고 이후 다른 자리에서도 여러 번 여느 때처럼 편하게 만났지만 방송이 나간 뒤 오히려 대중 사이에서는 파장이 쉬 가라앉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듯 예능 프로그램 같은 데 나가서 자연스럽게 풀어도 괜찮으련만 “낯도 가리고 말도 잘 못한다”면서 손사래를 친다. 류승룡은 “섣불리 해명하기보다 말을 아끼고 침묵하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일련의 반응들을 보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말의 무게감을 아는 배우다. 인터뷰 말미에 그나마 길게 자신의 연기 인생에 대한 짐작-계획이나 목표가 아닌-을 슬며시 내비쳤다.
“따로 맡고 싶은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어차피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역할보다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캐릭터를 담은 대본이 올 테니까요. 그저 신선하고 도전이 되는 작품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죠. 안주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